“플랫폼법 제정 골든타임 놓친 미국, 빅테크만 살아남았다”

2024-06-12 13:00:16 게재

플랫폼법 토론회에서 알렌 변호사 주장

“빅테크 로비전에 미국서 법 제정 좌절”

“군소유망 플랫폼 인수, 시장경쟁 막아”

플랫폼독점규제법(플랫폼법) 제정 시기를 놓쳐 대형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한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12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전날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고려대학교 ICR센터가 주최한 ‘유럽 DMA 시행 초기성과의 평가와 각국 대응상황’ 세미나가 열렸다.

토론에 나선 알렌 그루누스 브라운스틴 로펌 변호사는 미국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한국이 미국의 나쁜 사례를 뒤따르지 말 것’을 제안했다. 알렌 변호사는 “미국은 한때 디지털 플랫폼 규제에 나서려 노력했으나 빅테크들의 로비 등으로 끝내 현실이 되지 못했다”고 소개했다. 어느 나라보다 플랫폼산업이 먼저 발전한 미국인만큼 관련법 제정 논의도 가장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대 자본을 보유한 애플이나 구글 등 빅테크의 조직적 반발로 법 제정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조홍선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이 지난 4월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민생 안정을 위한 시장감시 및 경쟁 촉진 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다양한 플랫폼 활성화 기회 놓쳐 = 알렌 변호사는 “거대 빅테크가 미국시장을 지배하게 되며 이제는 다양한 플랫폼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플랫폼을 규제하려는 법안을 제정할 때, 특정 진영은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 기업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펼친 바 있다”면서 “빅테크들은 엄청난 로비자금을 풀어 관련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법 제정에 나서자 대형플랫폼과 일부 전문가, 언론은 ‘알리, 테무 등과 같은 중국 플랫폼을 돕고 토착 플랫폼의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어 주목된다.

빅테크가 장악한 미국에서는 스타트업 등이 플랫폼산업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생태계로 변질됐다고도 했다.

알렌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빅테크들이 잠재적 군소 플랫폼을 인수해 초기 경쟁자를 제거하는 등의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가 성공적인 디지털 빅테크 플랫폼을 공격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독점이 경제의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사전지정제 놓고 갑론을박도 = 세미나에서는 한국만의 시장 상황을 모색, 특화 전략을 신중하게 펼쳐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윤정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DMA가 발효된 지역에서 구글과 애플의 인앱결제 비용은 현저히 낮고, 그렇지 않으면 높다”면서 “DMA는 글로벌 빅테크 플랫폼의 독과점 우려를 상당부분 덜어내는 중”이라 판단했다. 유럽연합의 플랫폼법인 DMA는 지난해 제정된 후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나아가 플랫폼법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사전지정에 대해서는 유연함을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기존 공정거래법은 사후적으로만 규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변화속도가 빠른 거대 플랫폼의 독점 폐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공정위는 독점사업자를 미리 정하고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 연구위원은 사전지정에 무게를 두면서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정 플랫폼이 사건을 발생시켜 문제가 확실할 경우 사전지정 대상자로 삼는 것도 좋다”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일본은 스마트폰이라는 한정적인 영역에서 경쟁제한에 나서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독점이 강할 수 있는 스마트폰 운영체제에만 규제를 시도하는 것이며, 한국 플랫폼의 사전지정에 대해서도 비슷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종의 독일식 방법론이다.

◆“반칙행위, 엄단해야” = 세미나에 앞서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플랫폼법의 당위성에 대해 강조했다. 조 부위원장은 “플랫폼은 현재 국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도 “큰 덩치를 통해 반칙행위에 나서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소비자와 소상공인들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한편, 플랫폼 시장의 동력과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유럽연합이나 독일, 일본, 인도의 경쟁당국에서 기존의 법안을 보강해 경쟁제한 법안을 준비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각 국의 경쟁제한 법안이 나오자 구글과 애플 등 플랫폼 사업자들은 인앱결제 방침을 바꾸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일본에서도 4월 스마트폰 경쟁 촉진법을 통해 빅테크의 독과점을 막으려는 시도에 나서는 중”이라 말했다. 그는 “플랫폼에 대한 경쟁제한 법안은 한국 공정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나라들이 모두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플랫폼과 역동성과 창의성은 존중하지만 독과점 논란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플랫폼법 제정을 전격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업계 반발이 이어지며 플랫폼법은 21대 국회가 끝나며 자동 폐기됐다. 하지만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16일 법안 재추진 의사를 밝히며 논의는 다시 급물살을 타는 중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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