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저출생예산 47조원 중 절반은 무관
저출산위-KDI 세미나 “예산 착시·특정 분야 쏠림” … 효과 큰 ‘일·가정 양립’엔 8% 불과
세계 최하 출생율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약 47조원의 예산을 썼지만 절반은 저출생 해결에 직접 관련이 없는 분야에 사용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예산이 과다하게 책정됐다는 착시현상을 줄이고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예산 재구조화 필요성이 제기됐다. ‘건전재정’을 추구하고 있는 윤석열정부 기재부가 어떻게 화답할지 주목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1일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저출생 예산 재구조화 필요성 및 개선 방향’ 세미나를 개최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장은 “저출생 정책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어 온 예산을 효율적으로 재구조화 할 필요가 있다”며 “저출생 대응을 위해 저출생 대응과 직결되는 과제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심층적인 사업 평가를 통해 정책의 효과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된 KDI 자체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저출생 예산으로 투입된 분야 중 절반 정도는 저출생 효과를 보기엔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저출생 대응에 투입된 예산은 약 47조원(과제 142개)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가운데 저출생과 직결된 예산은 절반가량인 23조5천억원(과제 84개)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23조5000억원의 대부분은 주거지원 예산(21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주거지원 예산은 저출생 대응에 관한 국제 비교에서 기준이 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가족지출’에 해당되지 않는다.
가족지출은 영유아와 아동, 청소년, 여성, 가족에게 정부가 배타적으로 지원하는 현금이나 서비스 급여 등을 말한다. 더욱이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사업’처럼 대상과 목적이 지나치게 포괄적인 사업도 저출생 대응 과제에 다수 포함됐다.
또 이날 저출생 예산이 특정 분야에 편중됐다는 점도 지적됐다. 저출생과 직결된 예산 중 ‘양육’ 분야에 20조5000억원(87.2%)가 집중됐다.
반면 정작 효과가 크고 여성들의 요구가 높은 ‘일·가정 양립’에 투입된 예산은 2조원(8.5%)에 불과했다. 저고위의 저출생 인식조사(2023년 11월)에서 일·육아병행 제도 확대가 1위(25.3%)를 차지했다.
이런 예산 평가 위에 저출생 예산구조 개편 필요성이 집중 논의됐다. 홍석철 서울대 교수는 “경제규모와 초저출생의 시급성과 예산 제약 등을 감안할 때, 저출생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인식되는 일·가정 양립 지원에 보다 많은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숙 보건사회연구원 센터장은 “다양한 분야의 범부처 사업을 취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기획부터 성과제고 및 재정운용까지 사업운용 전반을 책임지는 중앙정부 차원의 거버넌스 체계를 정비하고 중앙-지자체 사업 간도 상호 보완되는 방향으로 개선하여 효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효과성이 없는 사업에 대해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정책 사각지대 분야에 대해서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동시에 실효성 있는 핵심과제 중심으로 재원을 집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일·가정 양립, 양육, 주거의 3대 핵심 분야에 주력하고 이들 사업 분야도 사업설계는 적절한지, 전달체계는 합리적인지, 유사·중복사업은 없는지, 정책수요자의 만족도는 어떠한지 등을 심층 평가해 구조 조정해야 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일본의 경우도 사정이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6일 일본은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1.20명으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가운데 일본 정부가 30년간 쓴 저출산 대책 예산이 66조엔(580조원)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2022회계연도에 저출생 예산이 6조1000억엔으로 10년 전과 비교해 거의 배로 늘어났다.
닛케이는 그동안 쓴 예산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반전을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저출산 대책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지원은 육아 지원 위주였지만 결혼 자체에 대한 기피, 가정과 일의 양립 어려움 등도 저출산 원인이라고 전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