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위해 지배구조 개선 필수”

2024-06-12 13:00:48 게재

일반주주 권익보호 전제 … 지배주주 간 이해상충 축소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회사와 주주로 확대해야

최근 금융권의 핫한 이슈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수라는 주장이 나왔다. 일반주주들의 권익보호를 전제로 지배주주 간 이해상충 문제를 축소시키고,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등 그동안 취약했던 일반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기반 마련이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취약한 일반주주 법적 보호기반 마련 = 12일 오전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는 여의도 금융투자센터 불스홀에서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를 주제로 정책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개회사를 통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수적”이라며 “특히 그동안 취약했던 일반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 회장은 환영사를 통해 “자본시장이 한 단계 레벨업 하기 위해서는 일반주주들의 권익 보호가 필수 전제 조건”이라며 “법과 제도 개선을 통해 일반주주와 지배주주간의 이해상충 문제를 축소시키고 지배주주의 일반주주에 대한 대리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축사를 통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방안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며 “기업이라는 거대한 배를 운행함에 있어 선장과 항해사의 역할을 하는 이사는 승객, 즉 전체주주를 목적지까지 충실하게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상장사 거버넌스, 회사법으로 규율해야 = 이날 세미나에서 첫 번째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 도입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를 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먼저 국내 상장기업 거버넌스의 핵심 문제는 주주 간 이해충돌 및 부의 이전 등 회사법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주로 공정거래법으로 이를 규율해 오면서 여러 가지 한계를 드러냈다.

소유 집중 기업의 핵심 거버넌스 이슈는 지배주주 일가가 해당 상장기업에 대한 지분과는 별도로 외부에 개인회사 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구조하에서는 지배주주들이 거래의 양 당사자가 되는 자기거래를 통해 상장기업의 이익을 편취하려는 유인이 발생한다.

지배주주 일가의 개인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일가에 대한 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 (BW) 저가발행, 상장기업과 개인기업간 불공정 합병 비율 등이 그 사례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러한 자기 거래를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규제 및 사익편취 방지 제도를 통해 규율해 왔지만 기업들은 과징금 부과 기준이 되는 지분율을 하회하도록 하거나 계열사 간 합병 또는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우회하는 방식 등 ‘정당한’ 방법으로 규제를 회피했다. 또 거래 가격의 부당성, 산업에서의 경쟁 제한 등 공정거래를 저해했다는 것을 공정위가 입증해야 하고 5조 미만 일반 상장기업은 사익편취 조항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

김우진 교수는 “이런 주주 간 이해 충돌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회사법에 이를 규율할 수 있는 일반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언론에서 우려하고 있는 주주와 회사 간 이해 충돌은 이번 개정의 규율대상이 아니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간 부의 이전 우려가 없는 일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인 신규투자, 인수합병(M&A), 연구개발(R&D) 등은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의 이해상충 = 두 번째 기조발제를 한 나현승 고려대 교수는 “국내기업이 갖는 대리인문제의 핵심은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의 이해상충”이라며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대리인비용 감소를 위해 주주의 권한 강화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나 교수는 “현재 국내 기업의 지배주주는 보유한 지분이 적음에도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모든 계열사에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며 사익을 추구하고 소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며 “지배주주의 지배권 강화와 경영권 가족승계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간 합병, 인적분할 시 자사주의 마법, 물적분할 후 자회사 동시상장 등이 진행되는 등 소수 주주의 이익침해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핵심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 교수는 주주의 권한과 정보접근성을 강화하는 한편,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임, 임원보수와 내부거래의 주주통제 강화, 기업 인수 시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등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주권 강화를 위한 주주총회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다.

황 연구위원은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 업무를 집행하도록 이사 선임에 대한 주주의 권리 강화가 중요하다”며 “카카오톡 등을 활용한 주총 정보 알림과 주총 개최일 분산, 소집통지시 감사(사업)보고서 제출, 주주 제안 관련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사회와 경영진의 대리인 의무 강화 = 이어진 패널토론에서도 전체 주주들의 의견과 이익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잇따랐다.

변준호 안다자산운용 대표는 “이사회 멤버 선임 시 집중투표제 및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 등을 통하여 전체 주주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며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 적용하고,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치 제고와 연계하는 등 이사회와 경영진의 대리인 의무 강화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지난 20년 동안 우리 법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인 취약한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다“며 ”이사에게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호할 의무를 명시하는 것은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김중혁 고려대 교수는 “주주의 권한 강화와 권익 보호를 위한 장치가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반주주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중요하다”며 “주주중심 거버넌스로의 전환을 포함해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투자분위기와 문화조성이 병행되어야 제도 개선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그 의미가 모호하여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사의 행위기준으로 작동하기 어려우므로 신중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성훈 코스닥협회 연구정책그룹장 또한 “제도의 실질적 정착을 위해 기업과 주주의 인식이 합치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배구조 개선 방안 마련 시 중소기업의 현실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정은정 금융감독원 법무실 국장은 “그간 일반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다양한 제도 마련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쪼개기 상장 등 이사 및 지배주주의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열악한 기업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과 더불어 이사의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되지 않도록 경영판단원칙의 법제화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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