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골칫거리 ‘남산에 사는 자부심’ 탈바꿈
서울 중구 '남산 고도제한 완화'
주민 앞장서고 공무원 뒷받침으로 성과
행정신뢰 회복하고 도심전체 재생 기대
“죽은 동네야. 시골동네보다 못해 여기는.” “쨍하고 해 뜰 날이 왔어요. 꿈만 같아요.”
서울 중구 다산동 주민들 이야기다. 민선 8기 들어 불과 2년도 안된 사이에 지역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 다산동을 포함해 장충동 필동 등 남산자락에 둥지를 튼 주민들은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지난 30년간 지역발전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던 남산 고도제한이 크게 완화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앞장서고 중구와 공무원들이 뒷받침해 거둔 성과라 “꿈만 같다”고 입을 모은다.
12일 중구에 따르면 민선 8기 들어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한 정책은 남산 고도제한 완화다. 화려한 상업거리에 가려진 낙후된 동네에 사는 주민들 목소리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성인 한명 지나가기도 어려운 신당동 ‘개미골목’, 차량이 다닐 수 없어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다산동 성곽길 아래다. “지붕이 새고 방으로 물이 떨어져도 손 볼 수가 없다”는 호소도 나온다.
김길성 구청장도 일찍부터 파악하고 있었다. 김 구청장은 “5개 동뿐 아니라 옆 동네까지 연동되는 문제였는데 중구도 서울시도 의지가 없었다”며 “헌법소원까지 생각했는데 ‘대상이 아니다’라고 해 결국 좌절됐고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장 주민들부터 “주민 동원해서 생색내기 하려면 시작도 마라”고 반발했다. 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은 남산 조망권을 둘러싼 시민단체 반발을 먼저 우려했다. 김 구청장은 “가까이서 보면 낡은 주거지가 오히려 남산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있다”며 “조망 지점을 일일이 확인하고 모의실험을 통해 전문가들을 설득한 점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주민과 공무원들이 하나 돼 움직였다. 직접 영향권에 있는 5개 동 주민들이 협의체를 꾸렸고 자발적으로 공부를 하며 토론을 했다. 수차례에 걸친 설명회에서는 진행상황을 날 것 그대로 공유했다. 주민들 이해가 쉽도록 영상으로 만들어 상영했고 동장들은 공부를 해가며 궁금증 해소에 일조했다. 김 구청장은 관련 부서 공무원들과 매달 두차례 도심 재생 관련 회의를 하며 힘을 실었다.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12m와 20m로 일률적으로 묶인 고도제한이 일부 지구해제는 물론 최고 36~40m로 완화됐다. 규제 전에 지은 건물을 대수선할 경우 구제방안도 마련됐다. 김길성 구청장은 “백미는 역세권과 마지막에 포함된 다산동 약수역(3·6호선) 일대”라며 “서울시 배려”라고 말했다.
기대 이상 결과물을 받은 주민들은 환호하고 있다. 지난 3일 성과공유회에서는 ‘서울의 찬가’를 각색한 ‘남산의 찬가’를 부르며 자축했다. 다산동 주민 진동호(43)씨는 “이번에도 안될 거라 생각하면서 기대반 염려반 함께했다”며 “구에서 마지막으로 힘내자고 하더니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남산이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게 아니라 남산에 산다는 자부심을 갖도록 하겠다”며 “신당10구역 등 재개발사업으로 낡은 도심을 재생하고 명동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 등을 통해 대한민국 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 도시로 성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