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불합치 법률 9개 개정시한 넘겨
대통령관저 시위 허용…아동·청소년 성범죄자도 공무원 가능
국회, 입법보완 외면 … 시한없는 헌법불합치 법률, 위헌상태 지속
야간집회 금지, 14년간 효력 정지 … 국민투표, 2016년부터 불가
21대 국회에서 끝내야 했던 헌법불합치 법률 개정이 시한을 넘기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장 관저 100미터 이내 시위를 금지했던 조항이 무력화됐다.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과 낙태법 규정조항도 효력을 잃은 지 오래다. 아동이나 청소년 성범죄자를 공무원에 임용할 수 없도록 규제한 법률도 적용할 수 없게 됐다. 재외국민들이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없게 되면서 국민투표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게 8년이 넘었다.
12일 국회사무처 법제실에 따르면 35건의 위헌, 헌법불합치 법률이 개정되지 않은 채 남아있고 이중 개정시한을 넘긴 헌법불합치 법률이 9개에 달했다. 이 법률들의 효력은 이미 정지됐다.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을 개정해 헌법에 위배된 내용을 바꿀 것을 요구했지만 21대 국회가 외면한 때문이다. 개정 법률안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여야간 이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모두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4개 조항, 5월 30일에 효력 정지 = 지난달 30일이 개정시한인 법안만 4개였다. 이 법안의 위헌 조항들은 지난달 31일부터 무력화됐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장 관저 100미터 이내 집회 금지 조항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지만 개정시한을 넘기면서 ‘집회 무방비 상태’로 전환됐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 11조는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 공관, 대법원장 공관, 헌법재판소장 공관의 경계 지점으로부터 100미터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소규모 집회의 경우 직접적인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고,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의 일부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집시법과 형사법 등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집회에 대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규제수단들을 통하여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며 “막연히 폭력·불법적인 상황 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가정만을 근거로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리는 모든 집회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의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하여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같은 이유로 국회의장 공관 인근 역시 집회 가능 지역으로 바뀌었다.
관련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3개가 상정돼 법안소위에 회부됐지만 여야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는 2010년 이후 14년 가까이 법 개정에 실패한 ‘야간 집회 금지’ 조항과 같이 사실상 ‘사문화’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상임위 통과한 군인사법 개정안, 결국 폐기 = 또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온 군인사법과 국가·지방 공무원법 조항 역시 지난달에 개정시한을 넘겨 아동과 청소년 성폭행범을 부사관이나 공무원에 임명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을 적용할 수 없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아동에 대한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행위로 형을 선고받은 경우라고 하여도 범죄의 종류, 죄질 등은 다양하므로 개별 범죄의 비난가능성 및 재범 위험성 등을 고려하여 상당한 기간 임용을 제한하는 덜 침해적인 방법으로도 입법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며 ‘과잉금지원칙 위반’으로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따라서 ‘상당한 기간 임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국회가 이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아동과 청소년 성범죄자에 대한 공무원 임용 제한을 막지 못하게 된 셈이다. 군인사법은 국방위에서 대안까지 만들어 통과시켰지만 법사위에서 계류시켜 결국 폐기됐다.
재외선거인의 국민투표권을 주민등록 또는 국내 거소 신고된 투표권자로 제한해 우리나라 국적을 갖고 있는 해외 거주자 중 상당수가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 규정도 2016년부터 효력을 잃게 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국민투표법 14조1항의 효력이 상실돼 현행 규정으로는 투표인 명부 작성이 불가능하므로 국민투표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도하려고 했다가 무산되기도 했다.
◆올해말까지 ‘8촌 이내 혼인 무효’도 개정해야 = 2020년에 자기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처벌 조항이 공백상태로 들어갔다. 보호관찰처분 대상자에게 무기한의 변동신고 의무를 부과하는 조항 역시 지난해 6월말로 효력을 상실했다.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보호관찰법은 징역 3년 이상 등의 형을 선고받았던 사람을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로 규정하고 이사 다닐 때마다 평생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헌재는 ‘변동이 있을 때 신고하도록 하는 의무기간의 상한을 정하는 방식’으로 개선입법을 결정하도록 요구했다. 하지만 2건의 개정안이 소위에서 멈춰 섰고 결국 폐기됐다.
국회 사무처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경우 개정 시한 전까지 위헌적 요소가 잠정 적용되지만 개정시한이 지나면 법 조항의 효력이 정지된다”고 설명했다. 사무처 관계자는 “국회가 헌법불합치 나온 법률 개정 중 시한이 정해진 것은 이에 맞춰 개정해야 하는데 논란이 많을수록 개정이 시한을 넘겨 효력이 정지되는 경우가 있다”며 “국회가 위헌 법률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시한이 정해지지 않은 헌법불합치 법률은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위헌 상태가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이를 외면하는 것 역시 국회의 직무유기에 해당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편 국회는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일괄적으로 혼인무효사유로 규정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민법 조항을 올해 말까지 개정해야 한다. 또 내년 5월까지는 혼인 중 여자와 남편이 아닌 남자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생부의 출생신고 방법을 규정해야 한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