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단독 국회, 1주일 해보니
여당 방어막 없이 무제한 질의, 맹공
의사일정·자료제출·증인채택 ‘맘대로’
10개 상임위 총가동, 국정기조 추궁
청문회·국정조사까지 일사천리 진행
“여당 안 들어오면 좋겠다” 표정관리
“발언 시간이 지나면 마이크가 꺼지니까 의원들은 시간을 더 달라고 하라.”
지난 12일 22대 국회 첫 법제사법위원회. 정청래 위원장이 회의 진행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줄 테니 마이크가 켜진 상태에서 정확하게 질의할 것을 주문한 말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이날 회의는 야당 의원들이 질의에 추가질의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윤석열정부의 국정기조를 비판하는 내용을 줄기차게 쏟아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단독 국회가 이어지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는 ‘높은 효용성’ 얘기가 나오고 있다. 4년 전과 달리 야당이라는 점에서 ‘역풍’ 우려가 크게 줄어든 데다 민주당 주도의 야당 단독 상임위에서 시간구애 받지 않고 여당 의원들의 ‘방패막’ 없이 국정 기조를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의 장관이나 차관은 나오지 않았지만 법사위엔 공수처장, 법원행정처장 등이 출석해 야당의원들의 집중 말폭탄을 받아줄 상대가 돼 주기도 했다.
17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이번 주엔 22대 국회에서 구성된 10개 상임위가 동시에 가동된다. 민주당 주도로 11개 상임위원장을 뽑은 후 예결위를 뺀 모든 상임위가 야당 단독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특히 이번 주에는 특검법 등을 다루는 법사위 제1법안소위가 열리고 교육위 농해수위 환노위에서는 장관 출석 등을 요구하기로 했다. 복지위는 의료 비상, 국토위는 전세사기에 대한 현안질의를 진행하고 과방위와 법사위에서는 입법청문회가 가동될 예정이다.
지난주에는 이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와 법제사법위가 두 차례 열렸고 보건복지위, 행안위, 국토위도 한 번의 전체회의를 열며 출발을 알렸다.
숨가쁜 입법 일정이 진행되는 가운데 민주당 내부에서는 “여당이 안 들어와도 좋다”, “여당 없이 하니까 더 좋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여당이 상임위로 들어와 밥값을 하라”는 외부용 공개요구와는 전혀 다른 속내다.
민주당 소속 한 법사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보통 장관이나 정부쪽을 야당이 공략하면 여당이 반박하면서 막아줘 제대로 공격하거나 비판하지 못했는데 여당이 없으니까 충분히 짚어내고 따질 수 있다”면서 “추가시간의 추가시간까지 사용하는 등 시간도 충분해 준비한 질의나 말을 다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여당과 야당이 번갈아 발언하는 경우가 많아 흐름이 끊기기도 하고 여당 의원들이 정부측의 변명이나 해명을 유도하거나 시간을 할애해 집중 추궁하던 분위기가 꺾이던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점도 야당은 ‘여당 없는 국회의 장점’으로 꼽고 있다. 여당은 야당의 비판과 비난에 여당의 지도부나 과거 정부의 행태를 들어 ‘내로남불’로 물타기 하거나 ‘팩트체크’를 통해 야당 의원 발언 중 사실과 다른 점을 부각해 야당의 논리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한 민주당 의원은 “여당 의원들이 없고 여당 간사도 없으니 자료제출 요구나 증인 채택, 청문회 개최, 국정조사 등이 위원장과 야당 간사 협의나 여당 없는 전체회의에서 손쉽게 통과시킬 수 있어 ‘특검’이 없어도 특검 효과를 어느 정도 낼 수 있는 상황까지 끌고 갈 수 있게 됐다”며 “원래 간사와 협의하도록 해 여당에서 의사일정이나 증인채택, 청문회 개최 등에 합의하지 않으면서 ‘독주’ ‘단독’ 비판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럴 우려가 전혀 없다”고 했다.
다만 민주당은 장관과 차관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고 있다. 여야간 공방 없이 야당의 공격일변도로 진행되면서 참석한 정부측 일부 인사들의 부담만 더욱 커졌다. 지난주엔 장관이나 차관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일부 기관장들만 출석했는데 이들은 자신들과 관련없는 온갖 질의와 비판을 어떤 방어막도 없이 받아야 했다. 발언하는 태도나 앉는 자세, 반박하는 형식 등에 대한 상임위원장과 의원들의 질책이 나오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장관과 차관을 위원회 피감 기관장석에 끌어 앉히는 게 주요 목표다. 장관과 차관 없는 상임위 질책은 다소 공허하기 때문이다. ‘여당 없는 국회’의 정점은 장관과 차관들을 몰아세우는 데 있고 이들로부터 ‘문제의 발언’을 유도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야당은 장관과 차관의 출석을 독려하고 압박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청문회, 국정조사는 증인 채택을 통해 동행명령, 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공개 경고뿐만 아니라 실제 작동함으로 장관과 차관을 자리에 앉히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민주당 핵심관계자는 “법안소위, 입법청문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 여당 방해 없이 진행될 수 있어 국정기조 비판과 입법 성과를 내는 데 훨씬 수월한 게 사실”이라며 “현재와 같은 분위기라면 겉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당이 아예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