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커피에서 숭늉까지 ‘마감의 위로’

2024-06-18 13:00:02 게재

2023년 통계결과에 의하면 국내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405잔으로 1년을 365일로 계산한다면 하루에 1.11 잔의 커피를 마시는 셈이다. 전세계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 152잔 대비 두배 이상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커피 프랜차이즈 가맹점수는 치킨 전문점을 추월했다. 2023년 국내 커피·음료점업 점포수는 10만개에 육박했으나 1만2000여개의 카페가 폐업했다. 그런데도 거리에는 몇 발자국만 걸어도 카페를 수없이 마주한다. 치솟는 물가에 저가의 프랜차이즈 커피는 소비자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업장의 월세가 200만원 이상이면 어느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사업장을 내주지 않는다. 곧바로 폐업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무조건 몇백 잔 이상을 팔아야 이것저것 떼고 본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가 커피의 살얼음판 위를 카페 사장이 걸으면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저가 커피에 행복하기에 미안할 일이다.

이젠 수요량이 생산량을 추월한 시점에 커피시장은 더 어둡기만 하다. 왜 우리는 커피에 이토록 열광적일까.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래한 때는 고작 19세기였고 더욱이 커피원두가 생산되지도 않는데 말이다.

쓴 맛에 중독? 아니면 브랜드에 중독?

역치(threshold)는 낮은 농도에서는 맛과 냄새를 느낄 수 없으나 어느 농도부터 그 물질의 맛이나 향기가 감지되는 농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의 최소감응 농도 중 쓴맛이 가장 낮다. 아주 낮은 농도에서도 쓴맛을 인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쓴맛을 가진 것은 독소를 함유할 가능성이 커 인간이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된 결과다.

커피의 쓴맛은 카페인으로 알려져 있다. 카페인은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향정신성 물질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는 일반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인정되는 GRAS로 분류된다. 이는 100% 안전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카페인은 퓨린 계열의 화합물이며 중추신경계의 각성제다. 카페인 의존증은 아직도 논쟁적인 부분이나 사실 여러 사람의 예를 볼 때 의존성이 있어 보인다.

쓴맛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는데 약의 쓴맛과 같은 기분 나쁜 쓴맛이 있는가 하면 커피처럼 상대적으로 깔끔하고 기분 좋은 쓴맛도 있다. 그렇다면 화학적 이유나 맛의 특성 때문에 우리는 커피에 중독된 것일까? 그래서 열광적일까?

관능검사(sensory test)라는 과목에서 팀별로 관능검사를 이용한 간단한 통계적 분석이 꼭 들어가야 하는 식품개발을 기획하는 과제를 제시한 적이 있었다. 한 팀이 특이한 주제를 잡았다. 커피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도를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시중의 커피믹스를 대량으로 제조해 스타벅스 브랜드 용기에 담았고, 한쪽은 저렴한 브랜드의 용기에 담았다. 그리고 내용을 모르는 학생들에게 선호도 조사한 것인데 비록 모수는 충분하지 못했어도 통계적으로 학생들은 스타벅스 용기에 담겨 있는 커피를 유의적으로 선호했다. 우리는 커피에 중독된 것이 맞나 혹시 브랜드에 중독되었을까?

숭늉 자취 감추고 커피가 그 자리 대체

어렸을 때 오후 6시 즈음 되면 저녁밥이 다 되고 부엌에서 조그만 사발에 주전부리가 나오는데 누룽지다. 솥에서 밥의 전분은 덱스트린으로 열분해되면서 갈색화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을 호정화라고 한다. 이때 생산되는 물질들이 독특한 고소함과 향미를 생산한다. 눌어붙은 누룽지는 숭늉으로도 재탄생된다. 우리는 숭늉을 들이켜야 저녁을 마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한끼를 마치고 커피 한잔 찾는 것과 흡사하지만 커피는 흥분을 다시 들추어내고 누룽지는 깊은 안식을 준다. 전기밥솥이 나오면서 숭늉은 자취를 감추었다. 숭늉은 어머님에겐 풍성하지 못한 밥상에 가족에 대한 감사함이고 미안함이었다.

숭늉은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식문화다. 그런데도 전통적 숭늉에 관한 연구는 1970년대에 게시된 논문들 외에는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1970년대, 일이 손에 안 잡히거나, 점심을 먹고 나서, 일을 마치고 피날레를 장식할 때도 자판기의 밀크커피를 이용했다. 산더미 같은 일거리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초능력을 커피에서 찾으려는 냥 개폐기를 열고는 굳이 커피가 나오는 것을 쳐다본다. 21세기, 이제 커피는 좀 더 고급화와 전문화가 되었고 다양한 취향에 따라 수없이 많은 커피가 탄생한다.

사뭇 기성세대들의 커피문화와 다르게 보이지만 억지로나마 시간의 여유를 담은 커피를 마주하는 신세대도 시간의 여유가 없는 미래에 대한 위안거리가 커피가 아닌가 싶다. 단지 그것이 흥분제라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다.

김기명 전 호남대 교수, 식품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