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 도요타도 손정의도 ‘NO’…일본 주총 긴장감 고조
6월 결산주총 시즌맞아 주주제안 크게 늘어
‘밀어주고 끌어주던’ 상호 주식보유 감소 뚜렷
세계적인 의결권 자문회사 ISS는 올해 도요타자동차와 소프트뱅크 최고경영자에 대한 의결권 반대를 권고했다.
이들 기업의 지분구조상 의결권 반대 권고는 부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일본 기업풍토에서 이례적인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업간 상호 주식보유를 토대로 서로 안정적 주주의 역할을 하던 일본식 주주총회에도 변화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도요타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 대한 선임 안건에 대해 부결을 권고해 주총시즌을 맞아 주목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ISS는 도요타 회장에 대해 완전자회사인 다이하츠공업 등에서 품질인증 부정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것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이 있다”면서 부결을 권고했다. 손정의 회장에 대해서도 자기자본이익률(ROE)이 최근 5기 연속 3%대로 급감한 것에 대해 최고경영책임자로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본 의결권 자문회사인 닛세이애셋매니지먼트도 올해 2월부터 의결권 행사의 기준을 엄격하게 변경했다. 내년 6월부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대표이사 등의 선임에 반대하는 권고를 내놓기로 했다.
이러한 권고는 도쿄증권거래소가 지난해 이후 기업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하는 PBR 1배 이상을 요구하는 사실상의 압박과도 연결돼 있다는 평가다.
최근 일본 기업 주주총회 모습이 바뀌고 있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 조사에 따르면, 이달 13일 기준 행동주의펀드 등의 주주제안을 받은 곳은 2000여개 상장자 가운데 91개 기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주주제안 내용도 이사선임과 주주환원, 제도개선 등 다양한 안건에서 336건에 달해 역대 최대다. 주주제안을 받은 기업과 건수 모두 최근 3년 연속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회사측 제안에 무조건 찬성하던 과거와 달리 주주들이 직접 상장사에 자본효율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며 “주주와 회사측은 어느쪽의 의견이 기업가치 향상으로 이어질지 공방을 벌이고, 이에 따라 주총을 앞두고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앞으로 이러한 주주제안을 받는 기업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처럼 일본 기업의 주총 풍경이 바뀌고 있는 데는 금융당국과 도쿄증권거래소의 적극적인 개혁 조치와 글로벌 행동주의펀드의 진출이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도쿄증권거래소가 지난해 이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PBR 1배 달성을 위한 조치는 기업 입장에서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정책보유주’의 감소이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금융기관이나 대기업 등이 주거래 기업 또는 협력업체의 주식을 상호 보유하면서 이른바 ‘안정주주’로서 의결권 행사에서 버팀목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 과정에서 최고경영자의 실적이나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와 혁신은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가 대거 일본에 진출한 것도 무관치 않다. 아이얼재팬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일본에 진출한 액티비스트펀드는 72개사로 10년 전에 비해 9배나 급증했다. 미국 투자펀드 달튼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토다건설에 자사주 매입을 요구해 이를 관철했다. 영국계 투자펀드 파리서캐피털은 게이세이전철에 오리엔탈랜드(OLC) 주식이 시가로 평가되지 않아 PBR이 실제보다 높게 보인다며 OLC 주식 일부를 매각하라고 했다.
이처럼 외국계 펀드를 중심으로 주주제안이 크게 늘어나고, 의결권 자문기구도 가세해 주총을 압박하면서 변화를 주도하는 양상이다.
시라스카 타카키 미쓰비시UFJ애셋매니지먼트 차장은 “일본의 일반 투자자들 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제안에 대해 터무니없는 제안이 줄고, 꼭 필요한 제안이 늘어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주주들이 개별 안건에 대해 확실히 검토해서 찬반을 결정하는 경향”이라고 했다.
한편 최근 일본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타사 보유주식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가 2023년 결산 상장사 보고서를 토대로 집계한 결과, 정책보유주를 많이 갖고 있는 상위 10개 기업의 보유주식 기업과 평가금액이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가장 많은 정책보유주를 가진 미쓰비시UFJ는 2167개 기업 주식 4조850억엔(약 36조원)을 보유해 기업수 기준 전년(2267개) 대비 4.4% 줄었다. 미쓰이스미토모도 같은 기간 보유주식 기업수가 1909개에서 1839개로 3.7% 감소했고, 도요타는 148개에서 141개로 줄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