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속도 못 따라가는 정부·지자체 재난대책

2024-06-18 13:00:01 게재

기상이변에 인명피해 속수무책

반지하 물막이판 설치 50%대

산사태·하천재해 여전히 위험

기상이변으로 인한 폭우로 해마다 수십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대비는 더디기만 하다.

반지하주택과 지하공간 침수를 막기 위한 물막이시설 설치율은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산사태나 범람 피해지역은 복구를 마무리하기 전에 다시 집중호우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18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171명에 이른다. 특히 이 같은 인명피해는 최근 5년 사이에 집중됐다. 2019년 18명, 2020년 46명, 2022년 30명, 2023년 53명 등 5년 동안 발생한 사망·실종만 150여명이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12일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산사태 피해 현장을 방문해 피해 복구 추진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예천·봉화·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에 내린 폭우로 산사태 등이 발생해 27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슷한 시기 충북 청주에서는 미호강 임시제방이 터지면서 오송 궁평2지하차도를 덮쳐 14명이 숨졌다. 이보다 앞서 2022년 8월 집중호우로 서울 관악구의 한 반지하 주택에 살던 발달장애인 일가족이 참변을 당했고, 그해 9월 태풍 힌남노 때는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7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처럼 최근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급증한 것은 예측을 벗어난 기후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 지난해 7월 경북 북부지방에는 1년 내릴 강우량의 1/4이 이틀 새 내렸고, 오송지하차도 참사 당시 붕괴된 미호천 임시제방 높이는 설계빈도 100년인 계획홍수위보다 1m나 높게 쌓았지만 불과 5시간여 만에 제방이 범람했다. 서울 관악구 반지하 침수 당시 서울에 내린 비는 115년 만에 최대 강우량을 기록했다.

태풍 힌남노 당시 범람했던 포항시 냉천은 80년 빈도로 설계돼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늘 예측을 뛰어넘는 상황에서 대형재난이 발생한 셈이다. 본격적인 여름 장마를 앞두고 국민들의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대비상황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산사태·하천재해·지하공간침수 등 3가지 유형의 집중호우 피해를 집중 관리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서울시를 비롯해 반지하주택이 밀집해 있는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지자체의 물막이판 설치율은 겨우 50%를 넘어섰다. 여전히 절반 가까이가 침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지하주차장이나 지하차도 침수방지시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올해 진입통제시설 151곳을 신규로 설치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필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다. 인천의 경우 37개 지하차도에 대한 위험도평가 용역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하천재해의 경우 복구를 3년 전 재해지역에 대한 복구도 마치지 못했는데 다시 집중호우시기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탄핵 기각 직후 복귀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집중호우 피해지역을 둘러본 뒤 밝힌 “우리나라의 재난관리체계가 기후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우리 재난관리체계가 기후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최소한 해마다 대규모 인명피해가 반복되는 일은 없도록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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