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특례상장 33% 상폐 위기…모두 바이오
2019년 상장 21곳 중 7개사 연 30억원 매출액 미달
퇴출 피해 빵집 인수·부동산 투자 등 본업 집중 못해
상장유지 조건 재검토 필요 vs '좀비기업' 증시 퇴출
지난 2019년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시장에 진입한 상장사 33%가 상장폐지 위기에 처했다. 모두 바이오벤처들이다. 이들 기업은 퇴출을 피하기 위해 빵집을 인수하거나 부동산투자,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 본업과 다른 사업에 주력하는 실정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실적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바이오기업의 특성상 기술특례상장 유지 조건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좀비기업들의 상장을 유지해야 하냐며 원칙에 입각한 한계기업 퇴출 제도 실시로 주식시장의 선순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나와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다.
◆돈 되는 것은 무조건 다? =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술평가특례, 성장성특례로 상장한 기업 21곳(이전상장 제외) 중 33.33%에 해당하는 7개 기업이 작년 연결기준 매출액 30억원을 넘기지 못했다. 매출액 미달 기업 7곳은 모두 바이오기업으로 내년에 관리종목 지정이 우려된다.
이에 기업들은 상장 조건을 유지하기 위해 최근 빵집을 인수하거나 아파트에 투자하는 등 신약개발 등 본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업에 나서고 있다.
암·질병 조기진단 기업 클리노믹스는 최근 호텔과 버섯공장을 인수했고, 리보핵산(RNA) 치료제 개발 기업 올리패스는 지난달 수원센트럴파크자이 민간임대아파트 241가구를 매입하는 등 대규모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유틸렉스는 프로그램 솔루션을 개발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을 인수했고 강스템바이오텍은 2021년부터 샴푸를 팔아 매출을 채웠다. 디엑스앤브이엑스의 전신인 캔서롭은 2017년 제천명지병원 장례식장 위탁운영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올해 3월 베이커리 기업 포베이커를 인수한 셀리드는 2019년 기술특례 상장제도로 상장한 항암면역치료백신 및 코로나19백신 개발 전문기업이다. 매출액 요건 관련 유예기간이 2023년 말로 만료됐지만 작년 매출액은 ‘0원’을 기록했다. 이에 셀리드는 상장유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통한 안정적인 매출 확보에 나선다고 밝히며 포베이커를 인수한 것이다. 포베이커는 2018년 설립되어 베이커리 제품의 판매 및 개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2023년 매출액은 약56억원이다.
이후 백신 개발 바이오기업이 어떻게 빵집을 인수하냐는 지적에 시달리던 셀리드는 이달 12일 기업설명회를 열어 관련 내용을 해명하며 “기존 사업과 무관한 분야로 신규 사업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당사 손익 내지 재무 상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이런 리스크를 알면서도 빵집을 사들인 건 당장 매출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관리종목’ 지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다만 셀리드는 포베이커 인수를 통해 안정적인 매출 발생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향후 건강기능식품 유통 사업을 전개해나갈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베이커 대표가 제약사 출신이기도 하고 건기식 등 고령층 식품 사업에도 뜻을 함께 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상장유지 조건 ‘딜레마’ = 이렇게 바이오기업이 해당 산업과 관련 없는 기업을 인수하는 이유는 ‘상장유지’ 조건 때문이다.
기술특례상장은 수익성이 나지 않더라도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코스닥 시장에 들어올 수 있도록 상장 기준을 완화해주는 제도다. 일반적인 코스닥 상장사들은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이하 법차손)이 자기자본의 50%를 초과한 경우가 최근 3년간 2회 이상이거나 최근 사업연도의 매출액이 30억원을 밑돌면 관리종목에 지정된다. 하지만 기술특례 제도로 상장한 회사들은 법차손 요건은 3년간, 매출액 30억원 미만 요건은 5년간 면제받는다.
그런데 2018년 10월부터 2019년 9월 사이에 기술특례 제도로 상장한 회사들의 면제 기간은 올해 사업연도를 기점으로 순차적으로 종료된다. 아직도 본업에서 매출을 올리지 못한 수많은 바이오벤처들이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기 위해 건강기능식품·화장품 등 부대사업에 주력하는 이유다.
기술특례상장 기업은 재무성과 없이 기술력만을 가지고 상장해 태생적으로 실적 불확실성이 크다. 실제 많은 특례상장 기업들이 상장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이 보유한 기술력을 시장의 매출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이 큰 폭의 적자상태다. 이는 기술개발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상업화되는 과정도 오래 걸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금융투자업계와 벤처업계에서는 상장유지 조건을 더 완화해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과 원칙적으로 상장폐지 조건을 강화해 좀비기업을 퇴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벤처업계 등 일각에서는 “다른 업종에 비해 자기 제품을 판매해 수익을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바이오기업의 특성을 고려해 기술특례상장 유지 조건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학계와 증권가에서는 “이미 수년의 기회를 줬는데도 코스닥 거래 요건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의 실적이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투자자보호 원칙과 주식시장 건전성을 중심에 놓고 처리해야한다”고 강조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한 종목 중 상당수가 관리종목에 지정되는 등 좀비 기업이 쏟아질 것”이라며 “이들 기업은 각종 불공정 행위에 악용돼 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어 퇴출하는 더 증시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