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밀 빼낸 삼성전자 전 부사장 기소
가담 임직원도 재판행
IP업무를 총괄했던 임원은 회사 기밀을 빼내 미국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그에게 내부 기밀을 유출한 직원은 일본에 회사를 세워 일본기업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보기술범죄수사부(안동건 부장검사)는 안승호 전 삼성전자 부사장(IP센터장)과 삼성전자 IP팀 직원 이 모씨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영업비밀누설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안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지적재산 관리를 총괄하는 IP센터 초대센터장으로 10년간 특허방어 업무를 총괄했던 인물이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부사장은 2019년 퇴사 직후 특허관리기업(NPE)을 설립하고 이씨를 통해 불법 취득한 삼성전자 기밀문건을 이용해 미국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한 혐의를 받는다.
NPE는 생산시설이나 영업조직 없이 소수의 기술 전문가와 소송 전문 변호사를 고용해 특허권 행사로 수익을 얻는 기업으로 ‘특허괴물’로도 불린다.
안 전 부사장은 NPE를 운영하면서 음향기기 업체인 미국 ‘테키야’사를 대리해 삼성전자와 라이선스 협상을 진행하던 중 2021년 8월 이씨를 통해 삼성전자의 ‘테키야 보고서’를 빼돌린 것으로 조사됐다. 안 전 부사장은 삼성전자 전 IP센터 기술분석그룹장 조 모씨와 보고서에 담긴 기밀정보를 분석해 소송을 낼 특허를 선별하고 2021년 11월 미국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9000만달러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안 전 부사장은 이 과정에서 선별된 특허를 중국계 NPE인 소송 투자자와 공유하고 소송비용을 투자받는 등 삼성전자의 기밀정보를 광범위하게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 법원은 이같은 우리나라 검찰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안 전 부사장과 테키야사가 부정한 행위로 특허소송을 제기했다고 판단하고 최근 기각 판결을 선고했다. 미국 법원은 “부정직하고 불공정하며 법치주의에 반하는 혐오스러운 행위”라며 소송을 제기한 안 전 부사장과 테키야사를 질타하기도 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삼성전자 내부 보고서를 유출한 이씨가 일본에 특허컨설팅 업체를 설립하고 브로커로 활동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 출원그룹장 이 모씨로부터 내부 정보를 제공받은 사실을 파악하고 이 그룹장도 배임수재 등 혐의로 함께 구속기소했다. 이 그룹장은 정보 제공 등의 대가로 12만달러를 받고 한국과 미국, 중국 특허법인으로부터 출원대리인 선정 등의 대가로 차명계좌를 통해 약 7억원을 취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또 이 그룹장과 공모해 정부에서 지원받은 사업비로 일본 회사의 무가치한 특허를 77만달러에서 매수한 뒤 해외계좌로 27만달러를 돌려받은 정부출자기업 대표 김 모씨에 대해서도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과거 삼성디스플레이 IP팀장(전무)으로 재직했던 김씨는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던 이 그룹장과 함께 특허 관련 허위자료를 작성하는 범행을 꾸민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수사를 통해 NPE 운영자의 불법행위를 최초로 확인해 단죄한 사안”이라며 “유사 사례에서 검찰 수사를 통해 우리 기업들을 보호할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최근 삼성, LG, SK와 같은 국내 기업들이 NPE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면서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하는 NPE의 불법행위에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