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마련 방안도 없이 “11세까지 책임지겠다”는 저출생대책

2024-06-20 13:00:02 게재

대통령실은 종부세 폐지하겠다는데 저출생위는 “종부세 지방 몫 활용”

저출생 관련 예산 신설부처서 사전심의·조정…제2 과학예산파동 우려

정부가 19일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저출생 문제에 대응하겠다며 대책을 내놨다. 앞으로 11세까지는 출생과 양육까지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취지는 좋지만 문제는 재원마련 방안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위원회)가 이날 밝힌 가장 구체적인 중앙정부 차원의 재원 대책은 지출 효율화와 성과미흡 사업 구조조정이었다. ‘지출 효율화’란, 결국 기존에 쓰는 돈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저출생 대책이 복지정책이므로 복지 관련 재원이 줄어들 수 있다. 수년째 반복하고 있는 ‘지출 효율화’로 마련할 재원규모도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또 인구위기대응특별회계를 신설해 관련 사업에 직접 투입되는 ‘예산 주머니’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금 등이 신설돼 특별회계의 예산 주머니를 채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제2 과학예산 삭감파동 조짐 =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신설될 인구전략기획부에 저출생 사업 예산에 대한 사전심의권을 부여해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현재 각 정부부처는 매년 5월 말까지 기획재정부에 이듬해 예산을 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재부가 예산을 심의·편성한다. 이를 저출생 사업 예산에 대해서는 관련 사업을 직접 추진하는 인구전략기획부가 일차적인 심의권을 갖고 중복 예산 조정 등 키를 쥐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기재부 안팎에서는 ‘작년의 과학R&D 예산 삭감 파동’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설 예정인 가칭 인구전략기획부가 저출생 예산에 사활을 걸고 직접 예산조정까지 하게 되면 결국 ‘엉뚱한 피해자’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다. 사회 각분야 예산 항목을 ‘전체적 균형감’을 갖고 예산을 배분하지 않고 ‘저출생예산 확보’에 몰입하다보면 ‘건드리면 안되는 기존 예산’까지 삭감·폐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폐지방침 ‘종부세 재원’ 활용? = -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저출생 투자에 부동산교부세를 활용한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문제는 부동산교부세는 종합부동산세 세수가 주요 재원이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실은 종부세 폐지를 추진하고 있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종부세 규모는 윤석열정부 출범 뒤 ‘다주택자 중과 완화’ 등의 조치로 매년 급감하는 추세다. 지자체에 배정되는 재원이 급감하면서 ‘지방정부 재정위기’까지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여기에서 추가로 ‘종부세 재원’을 하겠다는 건 탁상공론이란 지적이 나온다.

주형환 저출산고령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종부세가 폐지되면 부동산교부세를 통한 지원 방안은 어떻게 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종부세에 대한 논의가 최근 벌어졌고, 논의 향방을 예단할 수 없어 답변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얼버무렸다.

늘 거론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재원으로 끌어다 쓰는 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해 현실성 없는 재원대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경제부처 관계자는 “위원회가 다른 부처 등과도 협의가 충분히 되지 않은 대책을 내놓으면서 야당 설득을 통한 법 개정은 더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놨다.

◆‘특단대책’ 어떤 내용? = 이날 위원회가 내놓은 대책을 추려보면 ‘일가정양립, 양육, 주거’ 등 3개 분야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필요한 시기에 충분한 육아휴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11세까지 돌봄을 국가가 제공하는 체계를 갖추는 한편 신혼·출산·다자녀 가구에 대한 주택 공급을 늘려 출산이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도록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특히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저출생 문제에 대한 비상대응 체제를 가동하는 한편, 인구전략기획부와 저출생수석실을 신설하는 등 거버넌스 체계를 강화할 방침도 세웠다.

우선 정부는 월 150만원인 육아휴직 월급여(통상임금의 80%) 상한액은 250만원으로 올려 육아휴직 사용 시 겪는 소득 하락을 줄이기로 했다. 한국의 육아휴직급여 소득대체율은 급여의 상한액이 지나치게 낮게 설정돼 있어 육아휴직을 꺼리게 되는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육아휴직급여의 25%를 복직 후 6개월이 지나야 주는 사후지급 제도를 없애고, 육아휴직의 분할 사용 횟수를 2회에서 3회로 확대한다. 2주만 사용하는 ‘단기 육아휴직’ 제도도 도입하고, 가족돌봄휴가, 배우자출산휴가 등을 시간 단위로 쪼개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육아기근로시간 단축 제도와 관련해서는 자녀 대상 연령을 8세 이하에서 12세 이하로 넓히고, 최대 사용기간을 24개월에서 36개월로 확대한다. 월 20만원의 ‘동료 업무본담 지원금’도 신설한다.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을 출산휴가와 함께 신청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14일 이내에 사업주가 서면으로 허용하지 않으면 신청한 대로 승인되도록 한다.

아빠 출산휴가 기간을 10일에서 20일로 늘리고 3회까지 분할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부모 모두 육아휴직을 3개월 이상 사용할 경우 1년인 총기간을 1년 6개월로 연장한다.

또 정부는 현 정부 임기 내 실질적 무상교육·보육 실현, 틈새돌봄 강화와 초등 늘봄학교 전면 확대 등을 통해 0~11세의 교육과 돌봄을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내년부터 5세에 대해 유치원은 표준유아교육비, 어린이집은 표준보육비와 기타 필요경비 수준까지 지원을 확대해 무상교육을 실현하고, 임기 내에 3~4세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정부 임기 내 공공보육 이용률을 40%에서 50%로 높이고, 초등학생 대상 늘봄학교를 내년까지 전국 모든 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한다.

아이돌봄서비스는 민간에 대폭 확대한다. 2027년까지 공공과 민간을 합쳐 30만 가구가 더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정부지원 소득 기준을 중위소득 150%에서 200%로 높이고, 정부 지원 비율도 확대한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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