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여름 휴가철 말라리아 감염주의보

2024-06-24 13:00:03 게재

말라리아 감염에 주의해야 할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정부는 18일자로 전국에 말라리아주의보를 발령했다

‘말라리아(malaria)’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나쁜(mal) 공기(aria)’를 뜻한다. 이는 고대 로마시대 로마인들이 말라리아를 ‘나쁜 공기’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에서 유래했다. 말라리아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5세기와 16세기에도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특히 1550년에는 말라리아가 크게 유행해 조선 조정은 치료법에 관한 문서를 배포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말라리아 감염이 지속되어 16만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는 말라리아로 인한 비전투 손실이 한국군과 연합군에게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 이후에는 국제사회와 정부의 노력으로 한동안 말라리아가 사라졌지만 1993년에 재출현하면서 현재까지 국내에서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얼룩날개모기가 사람의 체액을 흡혈하는 과정에서 열원충을 전파함으로써 발생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이다. 인체에 감염될 수 있는 열원충은 모두 다섯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중 삼일열 말라리아만 발생한다. 초기 증상으로는 두통 식욕부진 오한과 함께 고열이 나타나며 삼일열 말라리아의 경우 48시간을 주기로 체온이 상승하다가 심하게 춥고 떨리는 오한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6~8월 얼룩날개모기 매개로 발생

국내에서는 주로 북한과 접하고 있는 접경 지역에서 말라리아 감염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인천광역시 경기도 강원도 순으로 많은 사례가 나타났다. 이 지역들은 북한에서 유입되는 감염된 모기의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유행 사례도 겹쳐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감염 경로로는 주거지나 직장에서의 모기 물림이 가장 많다. 군 복무 중이나 여행 중에 감염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는 2000년에 4142명의 환자가 발생해 정점을 찍은 후 2021년에는 274명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2023년에는 다시 673명으로 증가했다. 최근 감염자수가 증가한 원인으로는 국내에서 코로나19 대응으로 인한 보건 인력 부족과 북한의 국경폐쇄로 인한 말라리아 대응 자원 부족, 질병 통제능력 저하 등이 지목된다.

국내에서 말라리아 환자 발생은 주로 4월부터 10월 사이, 특히 6월부터 8월 사이에 집중된다. 이는 모기가 활발히 활동하는 시기와 삼일열 말라리아에 감염된 후 잠복기간을 거쳐 증상이 발생하는 시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모기 개체수는 기후와 생태적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기온이 높아지면 모유충이 빨리 성장해 모기 세대가 늘어나고, 비가 많이 오면 모기가 알을 낳을 장소가 늘어나서 개체수가 증가할 수 있다.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얼룩날개모기의 흡혈 활동은 해가 지고 어스름해지는 시간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 야간시간에 주로 이루어진다. 야간에 활동하는 군인이나 야외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은 말라리아 감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니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실제로 2023년에는 새벽에 야외활동을 한 부부 2명 야간시간에 축구활동을 했던 동호회 회원 3명에게서 말라리아 확진자가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삼일열 말라리아는 모기에 물린 후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잠복기가 약 18일인 단기 잠복기와 약 330일인 장기 잠복기를 갖는 사례로 구분된다. 장기 잠복기를 거친 경우에는 모기에 물린 시점이 전년도 여름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의료진이 예상하지 못해 진단이 늦어질 수도 있다. 초기 증상만으로는 말라리아 감염을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인천과 경기 강원 북부지역 야간활동 주의

하지만 인천광역시 경기도와 강원도 북부지역과 같은 위험 지역에 거주하거나 방문한 이력이 있고 규칙적인 발열주기가 나타난다면 말라리아를 의심해야 한다. 또한 삼일열 말라리아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도 병원체가 전파될 수 있으므로 신속한 진단과 치료로 모기 물림을 통한 타인에게로의 전파 위험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기온이 상승하면서 모기의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여름철의 무더위와 잦은 비는 모기 개체수를 더욱 늘릴 것이다. 국내에서 모기 매개 감염병 중 말라리아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므로 감염 위험이 있는 지역에 거주하거나 해당 지역을 방문해 야외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김종헌 성균관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