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없는 정치…윤석열정부 '입법 비상'
취임 후 정부 법안 60% 폐기, 원안 통과율 5%뿐
올해 384건 입법 계획 … 야당, 상임위마다 과반 차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1개월을 넘어섰지만 국정운영을 위한 입법과제들이 국회 문턱을 제대로 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2대 국회에서는 200석 가까운 의석을 갖고 있는 야당이 더욱 강경해져 정부 입법에 난항이 예상된다.
24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도 법률안 국회제출 수정계획’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할 법안은 384건이다. 연초에 계획했던 150건에서 234건이 늘어난 규모다. 행정안전부가 42건으로 가장 많고 해양수산부 33건, 법무부 30건, 기획재정부 29건, 국가보훈부 21건, 고용노동부 20건 등이다.
월별 법안 제출 계획을 보면 이달까지 80건을 내고 7월엔 120건을 내기로 했다. 다음달까지 절반 가까운 법안들을 제출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22대 국회들어 단 한 건의 정부 입법도 들어오지 않았다.
정부의 입법계획 법안들에는 윤 대통령이 주안점을 뒀던 부담금 폐지, 부처 소속 위원회 구조조정을 포함해 대통령실에서 쏘아올린 상속세법과 종합부동산세 조정, 적정 간부비율 유지 등을 담은 국방개혁관련 법률, 근로시간 제도개선(근로기준법), 대통령 관저 등 안전활동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대통령 경호법, 인사 독립성과 자율성을 높이려는 국가인권위법 등이 들어가 있다. 국가정보원의 국가안전기술연구원법과 국가사이버안보기본법, 민관협력 디지털플랫폼정부 특별법, 통합미디어법, 공정거래 분쟁조정법·소비자안전기본법 등 다수의 법안을 새롭게 만드는 제정 계획도 담겼다. 하지만 정부가 낸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윤석열정부 취임이후 지난 5월 29일까지 2년 여간 정부는 341건의 법안을 제출했고 이중 59.8%인 204건이 ‘폐기’됐다. 정부가 낸 법안 10개 중 6개가 본회의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사라진 셈이다. 이는 법률에 반영된 게 40%에 머물렀다는 얘기다. 정부가 제출했던 법안 그대로 통과된 것은 5.3%인 18건 뿐이었다. 당초의 원안이 일부 고쳐진 후 통과된 수정가결은 5건이었다. 다른 국회의원들의 법안과 같이 위원회 대안에 포함돼 통과된 것은 68건, 수정안 반영은 1건이었다. 정부 법안 내용이 대안에 일부 반영되면 정부 법안은 그대로 폐기된다.
여소야대 국면이었던 문재인정부 초반(2017년5월10일~2019년5월29일)과 비교해도 윤석열정부의 입법실적은 크게 나빠진 성적표다. 문재인정부땐 540건의 정부입법이 국회에 제출됐고 이중에서 65.6%인 354건이 법률로 반영됐다. 원안 가결이 11.5%인 62건이었다. 수정가결이 75건이었고 217건은 대안반영 법률안이었다. 186건이 폐기됐다. 폐기율은 34.4%, 3개 중 1개가 폐기됐다는 얘기다.
윤석열정부의 남은 3년 동안 입법은 지나간 2년보다 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여당의 의석수가 더 늘어나긴 했지만 절대과반의 민주당뿐만 아니라 강성의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이 야당에 포진하면서 반여 강도가 더 강해진 분위기다.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법사위를 포함해 최소 11개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야당인 민주당이 확보한데다 각 상임위와 법안소위의 과반을 야당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 여당의 입법활동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야가 강력한 대치국면에 빠져 있는 가운데 주도권을 야당이 쥐고 있는 국회에서의 입법 환경은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장애가 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야당과 거리를 두고 대화와 타협에 소극적인 상황이 지속되는 한 해법의 실마리를 찾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