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짙어진 의혹…공 떠안은 공수처
채 상병 청문회에서 신범철 “윤 대통령 통화, 회수 관련” 발언 논란
유재은 “임기훈, 경찰 전화 올 것 알려줘” … 대통령실 ‘조율’ 의심
특검법 재추진하지만 변수 많아 … 일단 진실규명은 공수처 몫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난 21일 연 ‘채 상병 특검법’ 입법 청문회는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과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등의 증인 선서 거부, 주요 증인들의 불성실한 답변 등으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끝났다. 하지만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과정에 대통령실 등이 개입한 정황을 드러내는 새로운 진술이 나오면서 수사 외압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더불어민주당이 특검법을 재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도입까지 변수가 있는 만큼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어깨가 더 무거워진 모습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채 상병 사건 수사에 대통령실이 관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신범철 당시 국방부 차관의 청문회에서의 발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신 전 차관은 채 상병 사건기록이 경찰에 이첩됐다 회수된 지난해 8월 2일 오후 윤 대통령과 통화한 것과 관련한 민주당 장경태 의원 질의에 “그것은 회수에 관련한 거고 외압을 행사한 것은…”이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과의 통화는 외압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답변이었으나 당시 통화가 사건기록 회수와 관련한 것이었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논란이 됐다.
신 전 차관은 뒤늦게 언론을 통해 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을 말한 게 아니라 통화 시점이 기록을 회수한 날이라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 전 차관은 윤 대통령과의 구체적인 통화 내용을 밝히지 않아 의심을 키우고 있다
청문회에서는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의 통화내용을 공개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발언도 관심을 모았다.
유 관리관은 ‘누구의 지시로 경북경찰청에 전화했느냐’는 민주당 이건태 의원 질의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전화를 걸었더니 경북경찰청이라고 했다”며 “(임 전 비서관이) 경북경찰청에서 전화가 올 것이라는 말을 해줘서 부재중 전화가 경북경찰청일 것으로 예상하고 전화한 것”이라고 답했다.
임 전 비서관이 사건기록 회수를 위해 국방부, 경북경찰청과 조율했다고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실제 군사법원에 제출된 통화기록을 보면 유 관리관은 지난해 8월 2일 오후 1시 42분에 임 전 비서관과 통화하고 오후 1시 51분 경북경찰청 수사부장과 통화한 것으로 나온다. 유 관리관은 수사부장과 통화하면서 사건기록을 회수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화기록에 따르면 임 전 비서관은 유 관리관과 통화하기 직전인 오후 1시 25분 윤 대통령의 전화를 받아 4분51초간 통화했다. 윤 대통령→임 전 비서관→유 관리관→경북경찰청 순으로 통화가 이뤄진 것으로 윤 대통령이 사건기록 회수에 직접 관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임 전 비서관은 이와 관련 “경찰청과 통화한 바 없다”고 답하는 등 당사자들이 개입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의심의 정황이 더 짙어진 만큼 공수처가 주요 사건 관계자들의 통화내역을 밝혀내 사건기록 회수과정의 외압 실체를 드러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청문회에서는 이른바 ‘VIP 격노설’이 등장한 지난해 7월 31일 상황과 관련해도 엇갈린 진술이 나왔다.
당시 이 전 장관 집무실에서 열린 현안 토의에서 정종범 당시 해병대 부사령관이 작성한 ‘정종범 메모’에 대해 유 관리관은 “장관님의 말씀을 적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 전 장관은 모든 내용을 다 지시하지는 않았다며 “10가지 중에서 한 4가지는 제가 지시한 것”이라고 했다.
‘누구누구 수사 언동하면 안됨’, ‘법적 검토 결과 사람에 대해서 조치 혐의 안됨’ 등 지난해 7월 31일 회의에서 나온 10가지 지시사항이 적힌 ‘정종범 메모’는 수사 외압의 주요 증거 중 하나로 꼽힌다. 앞서 정 전 부사령관은 군검찰 조사에서 메모 내용이 이 전 장관의 말을 적은 것이라고 진술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유 관리관의 말과 혼동했다고 번복한 바 있다.
‘VIP 격노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왔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이날 청문회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김 사령관은 군사법원에서 ‘해병대 수사단이 임 전 사단장을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하려하자 윤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다’는 내용의 격노설에 대해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어낸 것’이라며 부인한 바 있다. 이에 공수처는 지난달 21일 박 전 단장과 김 사령관을 소환해 대질조사하려했으나 김 사령관의 반발로 무산됐었다.
박 전 단장이 참석한 가운데 청문회에 화상으로 참여한 김 사령관은 VIP 격노설과 관련한 거듭된 질문에도 공수처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점을 들어 증언하지 않았다.
반면 박 전 단장은 “(김 사령관에게) 격노 얘기는 분명히 들었다”고 답했다.
이밖에 임 전 비서관은 지난해 7월 31일 김 사령관과의 통화 여부에 대해 지난해 국회 운영위에서는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지만 이번 청문회에서는 “날짜를 착각했다”고 번복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로 엇갈리거나 미묘하게 달라지고 있는 관련자들의 진술 속 진실은 무엇인지 공수처가 수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