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금융노조 사태를 우려한다
금융산업노조는 조합원 10만명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대표 산업별노조다.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에서 일하는 은행원이 조직의 주축이다. 이 노조는 우리나라 민주화와 산업화, 정보화 역사와 함께했다. 4.19혁명의 열망을 이어 받아 1960년 7월, 지금은 없어진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은행원이 중심이 돼 조직을 결성했다. 1987년 6.10민주항쟁 때는 군부독재를 무너뜨린 ‘넥타이부대’의 상징이었고, 1997년 평화적 정권교체에도 앞장섰다.
1970~19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산업의 혈맥으로서 자금을 융통하는 최전선에서 국민경제의 한축을 담당했다. 컴퓨터는 물론 변변한 계산기도 없이 주판알 굴려가며 은행문 닫고 밤늦게까지 시재금을 맞춰가며 일했다.
IMF 외환위기 때는 수많은 은행원이 눈물로 직장을 떠나야 했다. 이제는 ‘핀테크’ ‘가상자산’ 등의 출현으로 금융환경이 크게 변하면서 은행은 철 지난 레거시금융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여전히 가계나 기업, 정부는 힘들 때면 은행에 매달리고 은행원을 찾는다.
그런 은행원의 자주적 단결체인 금융노조가 최근 집행부 선거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심각하다고 한다. 당초 4월에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이긴 후보가 부정한 행위를 했다며 노조 선관위가 무효를 결정했고, 이에 당선자가 법원에 가처분을 냈지만 기각됐다. 이어서 치러진 재선거에서 처음 패배한 기존 집행부측 후보가 단독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상대 후보측은 다시 법원에 본안 소송을 제기해 끝까지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나선 상태다. 노조 전체가 극단적 대립으로 심리적 양분상태다.
노조를 이끄는 지도부의 갈등은 일부 간부의 다툼에 그치지 않는다. 조합원의 권익을 대변해야 할 노조의 조직적 분열은 대사용자 교섭력 약화로 귀결된다. 자신의 문제도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는 상대를 누가 존중하고 두려워하겠는가. 한 전직 금융노조 위원장은 “선배들이 어떻게 일궈온 조직인데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느냐”며 한숨지었다.
여기서 어느 전직 금융노조 간부의 말을 경청해 볼 필요가 있다. “전반적인 상황을 종합하면 처음 당선자는 억울할 법하다. 관행적인 행위를 걸어 당선을 무효화한 것은 기존 집행부의 독단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가처분이 기각됐기 때문에 절차상 명분을 잃은 것도 분명하다. 당사자가 억울해 본안 소송에서 판단을 받아보는 것은 그것대로 하면 된다.” “다만 당장 조직의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내년 말에 있는 임기선거에서 두 후보가 진검승부를 통해 조합원의 심판을 받는 것이 떳떳하다.”
금융노조의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후배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백만호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