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사회적연결

'환대의 식탁'에서 ‘도시농부’까지 함께 합니다

2024-06-27 13:00:02 게재

느티나무도서관, 경로당 선배시민들의 사회적 활동 지원 … "도서관에 정보가 있고 지지해 주는 사람 있어 창업까지"

용인시 느티나무도서관에는 다양한 이용자들이 있다. 한 이용자는 수제 맥주를 빚고 또 다른 이용자는 텃밭을 가꾸는 데 관심이 있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 알코올 의존증(중독)으로 삶의 나락까지 떨어졌던 남성도 이용자다. 그리고 이들은 도서관에서 모임을 하며 서로의 아픔을 다독이고 뜻이 맞는 이들끼리 텃밭을 함께 가꾼다. 도서관 공유부엌에서 식당을 차려 창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느티나무도서관의 다양한 ‘사회적 연결’을 살핀다.

22일 오후에 방문한 느티나무도서관에는 ‘환대의 식탁’이 열리고 있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가족들로 구성된 ‘사이에 부는 바람’이라는 자조 모임이 1달에 1번씩 진행하는 행사다. ‘사이에 부는 바람’ 회원들은 도서관을 이용하다 자연스럽게 자조 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자신들 외 발달장애 어린이와 가족들, 비장애 어린이와 가족들도 도서관에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환대의 식탁을 열고 어린이와 가족들을 초대한다.

5월 20일 느티나무도서관 인근 경로당에서 선배시민들이 희곡읽기를 하고 있다. 사진 느티나무도서관 제공

◆알코올 의존증 끊기 위한 자조 조임도 = 이날 함께한 가족들은 모두 6가족으로 어린이들과 가족들은 도서관 전체 층을 오가며 책과 공간을 둘러보며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모임이 끝날 때쯤엔 도서관에 마련된 공유부엌에서 팥빙수를 만들어 먹었다. 장애 어린이들을 키우다 보면 집 밖에 나가 밥 한번 제대로 먹기가 쉽지 않은데 도서관과 지역 주민인 자원봉사자, 다른 가족들 간 배려로 모두 함께 즐거운 경험을 만들 수 있었다.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은 “사이에 부는 바람은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기 보다는 그 경계에 바람이 불어 함께 섞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자는 의미”라면서 “장애 어린이와 가족들이 좀 더 용기를 내 어울리는 활동을 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들이 더 이상 움츠러들지 않고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고 덧붙였다.

올해 느티나무도서관의 활동 주제 중 하나는 ‘지역사회 돌봄’이다. ‘지역사회 돌봄’이라는 주제 아래 모인 또 다른 모임은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A., Alcoholics Anonymous) 모임이다. 느티나무도서관에서는 알코올 의존증을 끊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자조 조임이 주 1회 열린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가족 직장과 단절되고 삶이 황폐해진 이들은 모임에서 익명성을 존중하며 서로를 경청한다. 느티나무도서관에서 모인지 10여개월째인 이들은 도서관의 제안으로 ‘희곡읽기’를 하고 있다. 박 관장이 희곡읽기에 함께한다.

박 관장은 “희곡을 읽으며 배역을 맡아 아픈 속 얘기를 하고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면서 “이들이 스스로 힘을 키우는 과정에 도서관이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 의지가 되는 '지역사회 돌봄' = 느티나무도서관은 올해 초 인근에 새로 생긴 경로당을 찾아 나섰다. 도서관이 생각하는 지역사회 돌봄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거나 받는 관계가 아니라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이 만나서 서로 의지가 되는 관계다. 은퇴를 한 이후 경로당을 찾는 어르신들 중에는 지역사회 이웃들을 돌볼 만한 역량이 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도서관은 이런 어르신들이 지역의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지역 공동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도서관은 박 관장과 곽선진 느티나무도서관재단 사무국장을 중심으로 5개월여 동안 경로당에서 밥을 지어 함께 먹었다. 어르신들은 이 기간 동안 도서관에 신뢰를 갖게 됐고 도서관의 제안으로 ‘반찬나눔’과 ‘희곡읽기’에 참여하고 있다. 어르신들은 자원봉사자들과 경로당에서 반찬을 만들어 동네 이웃 10여가구에게 1주일에 1번씩 전달한다.

도서관 활동 중에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 간 연결이 일어난다. 희곡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한글을 읽지 못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어르신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겠다는 이용자를 연결했다. 최근엔 도서관 내 메이커스페이스(각종 장비 및 기기를 갖추고 창작 활동을 하거나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공방) ‘동네공방’에서 재봉을 하던 이용자가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과 함께 재봉틀을 돌려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박 관장은 “도서관은 어르신들을 ‘선배시민’이라고 부르며 관련 활동을 하는 어르신들을 ‘골목 히어로’라고 부른다”면서 “어르신들의 자존감을 높여 사회 참여를 하게 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지원하는 방법이 뭘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도서관, 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장" = 느티나무도서관은 최근 도서관 인근 텃밭을 분양받아 퍼머컬처(식물들이 자생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농업)를 실험하는 ‘도시농부’ 활동을 하고 있다. 도서관 3층의 텃밭작업장에서 상추 등을 재배하고 공유부엌에서 부침개 등을 만들어 먹어 이용자들에게 텃밭 가꾸기는 친숙한 활동 중 하나다.

15일 느티나무도서관 이용자들이 인근 텃밭에서 퇴비함을 만들고 나서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느티나무도서관 제공

지난해 뜻이 맞는 도서관 이용자들은 ‘베짱이 농부’ 활동을 했다. 인근 농장에 가서 실제 농업 종사자들의 일손을 돕고 공연과 제철 농산물로 만든 음식을 즐기는 활동이었다. 이같은 활동을 기반으로 퍼머컬처에 대한 책을 읽고 강의를 들은 이용자들은 인근 텃밭을 분양받아 책과 강의에서 얻은 지식을 실제로 현장에서 실험하고자 나섰다. 식물들이 미생물 등과 조화롭게 자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밭의 높이를 다른 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여 자생의 원리를 실험했다. 함께 텃밭에서 사용할 퇴비함을 설계하고 목공소에 가서 제작하기도 했다. 음식물 쓰레기 등을 퇴비함에 모아 사용해 자연스럽게 ‘자원순환’이 되도록 노력한다. 자원순환도 느티나무도서관의 올해 활동 주제 중 하나다.

변은위씨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도서관을 처음 찾았고 도서관에서 부침개를 해 먹으며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이라는 것을 알았다”면서 “도시동부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관계를 맺고 그림책 모임을 하면서 일상 얘기를 하며 지낸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TV만 보고 고립돼 살아가는 데 이런 관계들이 살아가는 힘을 준다”고 덧붙였다.

◆"사람과 사람 간 연결로 정보 전달" = 느티나무도서관의 활동은 창업으로도 이어진다. 동네공방에 있는 각종 장비와 기기, 공유부엌을 활용해 이용자들은 자신만의 제품과 음식을 선보인다. 또한 도서관은 ‘느티나무 메이커스’라는 이름으로 자신만의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이용자들을 지원한다. 느티나무도서관 주소를 사업자 등록 주소로 이용할 수도 있다.

본격적으로 창업을 하는 소상공인들은 수풍로상단협동조합에서 활동할 수 있다. 수풍로상단협동조합은 2년 전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을 포함해 용인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조성한 용인시민기금의 지원으로 설립됐다. 5월엔 수풍로상단협동조합에 속한 10여개의 소상공업체들이 모여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저마다의 제품을 선보이는 반짝마켓(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다.

이날 만난 손선영씨는 도서관 이용자로 창업까지 하게 됐다. 평소 수제 맥주를 즐겨 만들던 손씨는 도서관에서 ‘낮술 낭독회’를 열고 수제 맥주를 선보였다. 수제 맥주가 맛있어서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들어오곤 할 때쯤 느티나무 메이커스 활동을 하면서 공유부엌에서 자원순환에 중점을 두는 ‘제로웨이스트식당’을 차려 이용자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은 ‘제로쿡’이라는 브랜드로 수풍로상단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있다.

손씨는 “도서관 안에는 정보가 있고 지지해 주는 사람도 있어서 창업까지 할 수 있었다”면서 “제로쿡을 통해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는 경제활동을 하면서 좋아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박 관장은 “세상이 복잡하고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이용자에게 정보를 잘 전달하고 연결하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이라면서 “지식은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지식은 ‘동사’라고 말하는데 책만 제공하면 시민들의 삶에 힘이 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과 사람 간 연결, 사회적 연결이 돼야 그 맥락에서 삶에 필요한 정보들이 이용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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