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10조원을 건보에서?…‘건강보험 쌈짓돈’ 논란
민주당, 수가 인상에 건강보험재정 투입 제동
재정바닥 임박 … “퍼주기, 국회 동의 받아야”
기금 고갈을 눈앞에 두고 있는 건강보험재정을 정부가 쌈짓돈처럼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 주목된다. 특히 지난 코로나19 대응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의료대란때도 정부는 비상의료체계 지출뿐만 아니라 수가 인상 등 필수의료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에도 10조원의 재정을 건강보험에서 충당하기로 한 부분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27일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은 오랫동안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회 통제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고 법을 개정해 올해부터는 국회에 건강보험 재정상황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국민들이 납부한 건강보험 재정을 보장성 강화와 관련없는 데에 투입되는 것에 대해 민주당은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해왔고 국회에서 예산과 건강보험 재정 투입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전날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실시한 의료대란 청문회에서 정부의 필수의료 수가인상을 건강보험으로 메우려는 데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4선의 남인순 의원은 “필수과목 지원을 위해 별도의 수가지원을 하겠다는 것은 공감하지만 10조원 이상 지원하겠다면서 그 재원을 별도의 재정투입이 아닌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을 쓰겠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가입자인 국민의 보험료를 기반으로 조성된 것으로 국민들에게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한 재원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도 특정 진료과목의 수가 인상을 위해 건강보험 적립금으로 모두 충당하겠다는 것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 대한 포기선언이자 건강보험 재정안전화에 대한 국가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시민단체 등에서는 의료수가 인상은 곧바로 국민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정부의 건강보험 활용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내놨다. 대한의사협회는 “필수의료가 하루빨리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필수의료 지원을 위한 재정투입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면서 “기존 건강보험재정을 재분배하는 수준의 보상체계 조정이 아닌, 별도의 기금을 설치·운영하여 국가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강보험 재정지출에 대한 국회 통제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남 의원은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에 10조원을 쓴다는데 건강보험 적립금에서 쓰려면 국회 동의 없이는 안 된다”고 했다. 민주당은 오래전부터 “필수 의료수가를 올리자는 취지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건강보험재정을 10조원이나 사용하면 건강재정보험의 고갈 위험이 심각해진다”고 우려한 바 있다.
실제 건강보험 재정은 고갈을 앞두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건강보험 지원을 위해 편성한 예산은 13조7000억원으로 지난해(12조4000억원)에 비해 10.4% 늘었다. 그럼에도 올해 1조4000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2028년이면 25조원 규모의 적립금이 모두 고갈될 전망이다. 2032년엔 적자만 20조원에 달하게 된다. 이때 정부 지원금 23조원을 포함하면 건보 적자를 메우는 데 들어가는 세금만 43조원 수준이다. 민주당이 의료수가 인상을 건강보험으로만 충당하는 데 반대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국회 복지위 관계자는 “보장성을 강화하거나 서비스 질이 좋아지는 것과 관계가 없는 필수의료 수가 인상 재원을 가입자의 소중한 보험료로 조성된 건강보험 적립금으로만 충당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이는 보험료를 내는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최소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보고하고 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또 “윤석열정부는 의료계 집단행동에 따른 비상진료체계 가동을 위해 그간 2000억원의 정부 예비비를 투입하고, 건강보험 재정에서는 월 1883억원 등 8003억원을 사용했다”며 “법정감염병에 대한 대응은 정부 예산으로 쓰도록 돼 있는데도 코로나 때 7조원 가까운 예산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마구 쓰는 등 급속한 고령화로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정부에서 퍼주기식으로 건강보험 적립금을 활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사회적 연대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보험으로 함부로 쓰면 안된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