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네덜란드 일·가정 양립

시간 주권 보장한 유연근무로 여성 고용·출산율 높여

2024-06-28 13:00:01 게재

독일 아빠육아휴직률 44%, 네덜란드 여성 정규직 시간제 52% … “육아휴직만으로 저출생 해결 못해, K-유연근무제 찾아야”

윤석열 대통령이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년간 280조에 이르는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출산율은 매년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며 “이제 국가 총력전을 벌여서 암울한 미래를 희망차게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일·가정 양립에 대해 “기업규모,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누구나 일을 하면서 필요한 시기에 출산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 6.8%인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을 임기 내 50% 수준으로 높이겠다며 그 대책으로 육아휴직 급여 상향, 2주 단기 육아휴직 도입, 배우자 출산휴가 기간 확대와 시간단위 사용 등을 제시했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2018년 이후 1명으로 떨어진 뒤 2022년 0.78명, 2023년 0.72명으로 추락세다.

일·가정 양립이 보편화된 독일과 네덜란드는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각각 1.58명, 1.62명이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노동자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여성고용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국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발전재단 관계자들과 지난 5~11일까지 독일 네달란드를 방문해 일·가정 양립 제도와 사례를 살펴봤다.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에 있는 정보기술(IT) 기업 마이본볼프( MaibomWolff) 관계자들과 한국 고용노동부 공동 취재단이 일·가정 양립에 관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 고용노동부 제공

독일은 2006년에만 해도 1.33명으로 신생아 수가 1965년 130만명 대비 절반 수준인 67만3000명으로 줄어들면서 ‘멸종하는 민족’이란 평가를 받았다.

독일 정부가 저소득층 여성에게만 24개월 간 월 300유로(약 44만5000원)의 지급하던 육아휴직 수당을 2007년 ‘부모수당’으로 개편해 소득구분 없이 모든 부모에게 확대하면서 반등의 계기가 됐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육아휴직 급여의 84%가 고용보험기금인 반면 독일은 해당 재원을 국민이 낸 세금에서 마련하기 때문에 자영업자는 물론 무직자도 부모수당을 받는다.

대신 24개월이던 기간은 12개월로 줄었다. 부모 육아휴직 기간 총 3년 중 나머지 2년은 무급이다. 양육자가 이어서 휴직할 시엔 2개월의 추가 수당이 지급돼 최대 14개월을 받을 수 있다. 출생 전 순소득의 65%를 대체해주고 월 최대 1800유로(약 266만9000원), 최소 300유로가 보장된다.

●독일, 부모수당으로 여성 노동시장 빠른 복귀 = 독일은 아빠의 육아휴직 참여율을 높여 빠른 여성의 노동시장 복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드리아스 필저 노동시장·직업연구소(IAB) 연구원은 “부모수당은 휴직기간이 길수록 복귀가 어려워지는 여성의 빠른 복귀를 유도하는 정책”이라며 “2005년부터 보육시설을 확장한 효과와 부모 수당 효과가 결합돼 출산율이 상승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우자(아빠)가 6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쓰면 여성의 75%가 9개월 뒤 노동시장에 복귀했다’는 자체 연구결과도 소개했다. 아빠 육아휴직 기간이 짧을수록 엄마의 노동시장 복귀 시점은 더 늦춰졌다. 배우자가 전혀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자녀가 12세가 돼서야 여성의 복귀 비중이 25%에 그쳤다.

아빠 육아휴직률, 여성 직장복귀율은 출생율과도 연관이 있다. 부모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해지면서 여성고용률과 출산율이 모두 상승하고 있다.

실제 독일은 아빠 육아휴직률이 25.9%이던 2010년 출산율이 1.39명에 그쳤지만, 2010년 아빠 육아휴직률이 25.9%에서 2020년 남성 육아휴직률이 43.7%로 크게 늘면서 2021년 출산율도 1.58명으로 증가했다.

독일은 2022년 기준 연평균 근로시간이 1295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가장 짧다.

독일은 2001년 근로시간 단축, 근로시간대 변경 신청 권한 등을 법으로 규정했다. 2019년부터는 ‘시간제근로 발전법-한시적 근로시간 단축제‘를 도입해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연장 권리를 보장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45인 이상 사업장에서 6개월 이상 다닌 근로자는 근로시간 변경을 사업주에 청구할 수 있다. 사용자가 거부할 경우 제재 규정은 없으나 노동법원에 제소가 가능하다.

유연근무와 재택근무는 인재들을 영입하는 유인책으로 작용하고 있다. IAB가 2022년 직원 100명 이상 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둘의 조합’(돈과 시간)을 택한 비율은 6%였고 ‘시간’과 ‘돈’은 각각 59%, 34%로 나타났다. 돈보다는 시간, ‘유연근무’ 등 기업의 근로환경을 보고 직장을 선택하고 있다는 의미다.

독일은 아빠 유아휴직률이 높아지는 추세지만 아직 낮다고 보고 있다. 또한 성별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중대하게 인지하고 있다.

아빠 절반 이상이 부모수당을 쓰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안드리아스 필저 IAB 연구원은 “단순 추론으론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 수입이 많고 승진 가능성도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타 슐러 독일 연방고용청(BA) 담당관은 7일(현지시간) “2022년 여성은 주당 29시간 52분의 가사노동을 하는 데 비해 남성은 20시간 42분에 그쳤고 남녀 간 연금격차도 상당하다”면서 “지난해 독일 남성의 연평균 연금 수급액은 2만5599유로(약 3800만원)로 여성(1만8663유로)보다 27.1%를 더 받았다”고 말했다. 여성이 노인 빈곤에 빠질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독일 근로자들도 ‘공공 보육 강화’를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알렉산드라 메스머 마이본볼프 커뮤니케이션 부서장은 ‘독일 정부에 바라는 점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모든 초등학교에 오후 돌봄반이 있는 게 아니어서 돌봄반이 있는 ‘전일제 학교’를 일괄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정규 수업은 오후 1시 안에 마치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인들은 1년 법정휴가 30일을 이용해 통상 1년에 6주간 휴가를 갖는데 아이들 방학은 13주인 탓에 나머지 7주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일·가정 양립 OECD 5위 = 네덜란드는 2022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평가한 일·가정 양립 영역 부문 전체 41개국 가운데 5위다. 우리나라는 35위다. 2022년 기준 네덜란드 전체 취업자 중 주당 35시간 이하로 일하는 시간제 근로자의 비율이 35.1%로 OECD(평균 16.1%) 1위다. 우리나라는 16.4%, 독일은 22.2%다. 특히 여성의 시간제 비율은 절반 이상(52.3%)이다.

우리나라 ‘시간제’는 아르바이트나 단시간 일자리로 대부분 저임금·비정규직 일자리라는 인식인 반면 독일과 네덜란드는 ‘정규직과 근로조건이 같은 시간제 근로’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근로자의 근로시간 단축·변경 신청 권리를 법·제도로 보장하고 있어 전일제와 시간제를 안정적으로 오갈 수 있다. ‘전일제’로만 일하려는 한국의 ‘시간제’와 차원이 다르다.

네덜란드는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을 계기로 시간제 고용이 빠르게 확산됐다. 당시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병’이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경제가 악화했다. 노조는 높은 임금 인상률을 주장했고 기업들은 사람을 뽑지 않아 실업률이 급증했다.

이에 노·사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네덜란드 사회경제위원회(SER)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임금동결 △노동시간 단축 △시간제 고용 도입에 합의했다.

SER은 정부와 의회에 정책적 자문 역할을 하는 독립적 기구로 우리나라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와 비슷하다. 경사노위는 대통령 직속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다.

예룬 피서 SER 연구원은 “바세나르 협약은 종이 한장짜리에 ‘임금인상 억제’, ‘일자리 재분배’라는 딱 두개 내용이 담겼다”며 “이를 계기로 임금과 물가 상승의 악순환이 끊기고 취업률이 높아지는 동시에 무엇보다 근로시간이 확 짧아졌다”고 설명했다.

그 시작은 1993년 정비된 ‘시간제 최저임금 및 연차휴가 적용 등 법적 지위 강화에 관한 제도’다. 1996년 ‘노동시간법’을 도입해 최대 근로시간, 야간·주간 근무, 분야별 근로시간 관련 의무사항 등 근로시간 관련 근로자의 권리를 법제화했다.

또한 전일제와 시간제 간 근로조건 차별을 금지토록 규정한 ‘동등대우법’이 1996년 시행됐다. 2000년 근로자의 시간 조정 권한을 인정하는 근로시간조정법이 도입됐다. 2016년에는 ‘유연근무법’이 시행으로 근로시간뿐 아니라 ‘장소’까지 포함해 6개월 이상 일한 근로자는 희망 날짜로부터 최소 2개월 전에 신청하면 ‘1년 1회’ 장소와 시간 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주는 재정 등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근로자 요청을 거부할 수 있다.

2022년 기준 네덜란드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361시간으로 OECD 평균(1719시간)과 비교해도 매우 낮다.

코로나19시기인 2022년에는 재택근무를 근로자의 권리로 인정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원격근무를 도입한 사용주에게 사회보장기여금을 감면하고 사용주가 지불한 원격근로자의 인터넷·전화비용 등에 세제 혜택을 지원토록 했다.

네덜란드 재택근무 활용률은 48.5%로 전세계 1위다. 우리나라(4.4%)는 물론 유럽연합(EU) 평균 20%보다도 크게 높다. 네덜란드는 유급 육아휴직을 2022년에야 도입했다. 2019년 4월 EU가 회원국에 유급 육아휴직을 최소 2개월 이상으로 보장하라고 지침을 만들면서다. 우리나라가 1987년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해 2001년 11월부터 육아휴직급여를 지급해온 것과 비교하면 20년이나 뒤처진다.

네덜란드의 육아지원제도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배우자 출산휴가로 나뉜다. 육아휴직조차 ‘유연성’을 포함하고 있다. 자녀가 8세 이전 쓸 수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주간 근로시간의 26배로 주당 38시간 근무 기준 26주(988시간)다. 한국은 한번 쓸 때 30일 이상, 2회로 나눠 쓸 수 있는 게 전부이지만 네덜란드는 육아휴직을 시간단위로 쓸 수 있다.

육아휴직 급여액은 최초 9주만 주어지며 액수는 일급의 70%까지이고 만 1세까지만 지급된다. 급여액 상한액은 일급 중위소득 70%인 179.82유로(약 26만7000원)이다. 배우자 출산휴가는 출산 6개월까지 6주를 쓸 수 있다. 첫주만 임금의 100%를 보전하고 나머지 5주는 육아휴직 급여처럼 70%를 보전한다.

네덜란드의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사회고용부(SZW) 관계자는 “여성의 경제활동참여를 촉진하는 것이 노동시장 인력부족을 해결할 수 있고 정부의 워라밸 정책목표 중 육아를 빼놓을 수 없다”며 “부모의 노동참여를 권장하고 있고 남성의 육아나 가정돌봄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육아휴직 급여의 재원은 사용자가 전액 부담하는 사회기여금이다. 우리나라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고용보험기금이고 독일이 정부 재정으로 부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단 그 액수나 기간을 짧게 설계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성의 ‘노동시장 복귀율’에 있다.

이비 콥만 SER 연구원은 “부모의 노동시장 참여가 너무 오랫동안 중단돼서는 안된다는 SER 자체 연구가 있다”며 “이를 포함해 여러 연구는 최적의 육아휴직 기간을 20주에서 30주 사이로 제시한다”고 말했다. 이어 “육아휴직 정책을 설계할 때 노동시장으로의 복귀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주 뢰스던에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 아파스(AFAS) 관계자들과 한국 고용노동부 공동 취재단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고용노동부 제공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한 한국, 시간제 는 ‘나쁜 일자리’ = 취재에 동행한 정성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한 한국에서 시간제는 나쁜 일자리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2~3시간 근로시간을 줄이면 업무를 어떻게 배분할지, 인사평가나 임금체계는 어떻게 반영할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적인 맥락에서 독일 네덜란드 사례를 그대로 도입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형 유연근무제를 모색해야 한다”면서 “너도 쓸 수 있고, 나도 쓸 수 있는 유연근무제도가 보편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1일 출범한 경사노위 산하 ‘일·생활 균형위원회’(위원장 이인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에서 좋은 사회적 합의가 나오기 기대했다.

장현석 고용노동부 고용문화개선과 과장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경향은 더 심화할 것”이라며 “기업에서도 이런 흐름을 인지하고, 적기에 인사노무 시스템에 반영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뉘른베르크·헤이그=한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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