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거래 야산에서 삽질까지 한다
단속 심해지자 땅속에 묻어 유통
경찰, 46명 검거하고 12명 구속
마약범죄에 대한 전방위 압박이 지속되자 마약사범들이 산에 마약을 묻어 거래하고 있다. 과거 간첩이 중요 공작물을 비트에 묻어둔 뒤 전달하는 방식이 연상될 정도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필로폰 17.6kg(586억원 상당)을 밀수입한 뒤 야산에 파묻어 전달하는 수법으로 유통한 46명을 검거하고 이중 12명을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땅속에 묻힌 필로폰 8.6kg(286억원 상당)을 압수했다. 이는 28만명이 한꺼번에 투약할 수 있는 물량이다.
범행을 주도한 A, B, C씨는 지난해 11월부터 두달간 미국에서 출발한 항공택배로 공기청정기 필터를 들여왔는데, 이 안에는 17.6kg의 필로폰이 숨겨져 있었다.
C씨는 필로폰을 100g씩 소분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뒤 야산에 파묻었고, D씨 등에게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줘 수령하게 했다. D씨 등 7명은 땅속에서 필로폰을 파낸 뒤 이를 다른 유통책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경찰은 C씨가 마약을 묻어 놓은 장소를 찾기 위해 경찰견과 정밀수색 장비까지 동원했다. 도심지 골목길 등에서 비대면(던지기) 수법으로 마약거래가 어려워지자, 인적이 드물고 폐쇄회로(CC)TV가 없는 야산으로 거래장소를 옮긴 것이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마약을 사들여 투약한 26명을 검거했다. 경찰은 위장거래를 통해 투약자와 소매유통을 담당한 이들부터 검거한 뒤 윗선까지 수사망을 넓혔다. 수사 과정에서 국내 유통책인 C씨의 주거지, 국제택배와 야산에 묻혀있던 필로폰 등 모두 8.6kg을 압수했다.
이들이 교묘한 범죄를 모의한 곳은 공교롭게 교도소였다. 국내 총책인 B씨는 교도소에서 알게 된 C씨를 미리 포섭한 뒤 국내 유통을 총괄했다. 택배 송장 역시 주거지가 아닌 주변 건물을 선택해 경찰 추적을 피하도록 했다.
B씨와 C씨는 교도소에서 결탁한 사이였지만 B씨는 C씨를 믿지 않았다. C씨가 배신할까 걱정된 그는 C씨가 필로폰을 수령하거나 재유통시키는 과정을 몰래 감시했다.
경찰 수사가 노출될 위기에 빠진 것도 B씨의 치밀함 때문이다. 경찰이 C씨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B씨가 오히려 경찰 수사팀 차량을 미행하기까지 했다. 경찰의 기지로 정체가 탄로 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오랜기간 진행해 온 수사가 물거품될 뻔했다.
총책인 A씨는 B씨보다 더 치밀했다. 가상자산으로 범죄수익을 나누거나 중국에서만 사용하는 인터넷 결제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경찰 추적을 피하기도 했다.
경찰은 A씨를 검거하기 위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신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야구배트 필로폰 은닉 밀수입 등 2021년 이후 대규모 마약밀수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수사기관 역시 전문화되고 있어 마약사범은 검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