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극단적 ‘유튜브 정치’ 키우는 국회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자서전에 담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독대 대화가 화제다. 김 전 의장은 “윤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썼다. 박홍근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좌파언론들이 사고 2~3일 전부터 사람이 몰리도록 유도한 방송을 내보낸 이유도 의혹’ ‘사건의 의혹을 먼저 규명하지 않고 이상민 장관을 사퇴시키면 혹시 나중에 범죄 사실이 확인될 경우 좌파 주장에 말리는 꼴’이라고 말했다”는 전언까지 공개했다.
김 전 의장은 “극우 유튜버 방송에서 나오는 음모론적인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는 것을 믿기 힘들었다”고 썼고, 박 전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극우성향의 유튜브에 심취해 있다는 말은 여러번 들었다”며 “지금도 극우 유튜버들의 음모론을 사실로 믿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의 유튜브 시대’가 도래했음을 분명히 하는 역할을 했다. 극우 강성 지지층들이 일부 보수 유튜브에 심취해 있었을 때 민주당 강성 지지층 역시 친민주당계 유튜브 내용을 흡수하는 데 열중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가 친명 유튜브를 자주 본다는 얘기도 무성하고 심지어 이해찬 민주당 고문은 전국 순회 당원모임에서 ‘유튜브 시청으로 시작해 유튜브 시청으로 끝나는’ 자신의 일상을 소개하면서 “레거시 언론을 보지 말고 유튜브를 보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강성 지지층들의 집합체인 유튜브에서의 발언과 평가, 출연 등이 선출직 경선과 본선에서 ‘당심’을 확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경로가 돼 버린 지 오래다.
문제는 유튜브 채널이 ‘그들만의 일방통로’라는 점이다. 때문에 음모론의 출발점이거나 배포처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강성 보수 유튜브 채널엔 보수 인사들만 나온다. 강성 민주당계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발언이 강해질수록 지지층들의 환호가 쏟아진다.
‘정치 유튜브의 활황’은 국회의 빈약해진 역할과 맞닿아 있다. 통신 기술 발달로 유권자들의 정치참여와 의사 표현이 손쉬워졌는데도 국회는 여전히 ‘여의도 의사당’에 갇혀 있다. 5만명 넘게 동의한 청원을 방치해 ‘폐기’시키고 입법심사를 한달에 세번하는 것도 버거워한다. 상임위나 본회의장에서는 대화와 토론의 기본도 지키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모욕과 모멸 발언만 쏟아내면서 ‘또다른 유튜브 방송’을 만들어 놨다.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지도 오래다. 국회가 ‘음모론’의 숙주가 될까 걱정될 정도다. 강성 지지층의 ‘당심’에만 의존하는 국회의 미래는 생각하기도 겁난다. 국회가 강성 유튜버에 장악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이미 장악된 것일까.
박준규 정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