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 상호출자주식 매각 잇따라

2024-07-02 13:00:34 게재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호 지분”

전후 일본기업 지배구조 근간 약화

전후 일본 기업 지배구조의 근간을 이뤄온 기업간 상호출자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대기업 집단 내부와 협력업체, 주거래 은행 등 상호간 주식을 보유하면서 우호지분 역할을 해오던 관행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진단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강력한 기업 밸류업 드라이브에 개별 기업이 호응하는 모양새로 일본 자본시장 활성화에도 적지않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2024년3월 결산법인(2023년4월~2024년3월)이 공시한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상당수가 상호보유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문에 따르면, 미쓰비시전기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24개 기업의 주식을 매각했다. 도요타통상과 도요타방직도 서로 갖고 있던 주식 전량을 매각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도요타그룹은 계열사간 상호주식 보유지분을 처분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인 덴소는 올해 3월 말까지 도요타방직 등 8개 기업, 도요타합성은 도요타방직과 덴소 등 18개 기업, 아이신은 덴소와 도요타통상 등 7개 기업의 주식을 처분했다. 아이신은 향후 상호보유 주식의 전부를 매각해 ‘제로’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도요타자동차도 지난 1년간 비상장 주식을 포함해 3000억엔(약 2조6000억원) 상당의 상호 보유주식을 내다 팔았다. 도요타그룹 계열사간 상호출자 해소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자동차를 비롯해 덴소와 방직 등은 아이신 주식을 이달 중으로 모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기업은 주식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전기자동차(EV) 등 성장분야에 집중투자하거나 주주환원 등으로 돌릴 예정이다. 이 기업들은 최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가 넘어서는 등 주가 상승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미쓰비시와 미쓰이, 스미토모 등 일본 재벌그룹의 원류인 기업들도 상호 보유주식을 계속 매각하고 있다. 미쓰비시그룹은 미쓰비시중공업이 미쓰비시상사와 미쓰비시창고의 주식을 모두 처분했다. 미쓰이와 스미토모그룹도 비슷하다. 미쓰이스미토모건설은 스미토모부동산과 미쓰이부동산, 스미토모상사 및 화학 등 그룹계열사를 중심으로 29개 기업의 주식을 모두 매각했다.

재벌계열 기업뿐만 아니라 금융그룹도 상호간 주식 보유를 줄이고 있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FG)과 미쓰이스미토모FG, 미즈호FG 3대 금융그룹은 비상장기업을 포함해 보유하던 상호보유 주식 1조3500억엔(약 11조6000억원) 상당을 매각했다. 이는 전기 대비 40% 가까이 증가한 수준이다.

일본 기업은 패전후 안정적 우호 주주를 확보하기 위한 일환으로 협력업체나 재벌집단 상호간 주식을 보유해왔다. 이를 통해 상호 출자한 기업의 경영에 대해서는 사실상 전면적 지지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의견은 묵살됐고 일본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점으로 인식돼 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주주’라고 했다.

일본 정부와 금융당국은 ‘정책보유주’로 불리는 기업간 상호출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0년부터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상호보유 주식 규모와 기업현황을 공시하도록 했다. 특히 지난해는 경영상 또는 업무상 상호보유의 구체적인 목적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는 등 사실상 매각을 압박하기도 했다.

노무라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상장기업의 상호주식보유 비율은 2022년 기준 시가총액 기준 7.7%에 달했다. 이는 1991년(34%)에 비해 큰폭으로 하락한 수준이다. 글로벌 의결권 권고 기관인 ISS 등은 일본기업이 순자산의 20% 이상 규모를 상호보유주식으로 가지고 있을 경우 최고경영자 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질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쿄증권거래소가 기업의 PBR 개선을 독촉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보유 주식에 대한 매각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해외 투자자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일본 기업의 오랜 관습이 없어지면 국제적인 평가가 개선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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