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펀드 민간투자 견인 효과 미미…“기능 재정립 필요”
민간출자 비중 10년만에 3.5배→1.0배
VC투자 안정화 경향, 후기기업에 집중
“민간자금 마중물에서 시장실패 보완으로”
한국벤처투자를 이끄는 수장이 8개월째 공석이다. 유웅환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사임했다. 대표에 선임된 지 1년 2개월 만이다. 임기를 남겨두고 자진 사임한 첫 사례다.
한국벤처투자는 모태펀드 운영기관이다. 유 전 대표 사임은 중소벤처기업부와 갈등 때문으로 알려졌다. 모태펀드 운영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는 게 정설이다. 중소벤처업계에서는 유 전 대표의 사임을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동안 모태펀드 운영과 관련해 ‘전문성’과 ‘공공성’이 대립해 왔다. 2015년 모태펀드 운영기관 지정할 때부터 시작된 논쟁이다.
전문성은 자본시장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수익성 우선을 강조했다. 한국벤처투자도 자본시장 출신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공공성 주장 측은 "지나친 수익중심은 공공성을 헤친다"며 정책펀드 역할을 내세웠다. 사모펀드에 세금을 지원해 수익을 보장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초기에는 전문성 우선 원칙으로 운영됐다. 초기 한국벤처투자 대표에 자본시장 출신들이 임명된 이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공성이 강화되는 흐름을 보였다. 대표도 자본시장 출신들이 밀렸다.
◆전문성과 공익성의 갈등 = 또다시 모태펀드 기능과 역할을 둘러싸고 이견이 불거지고 있다. 공석인 한국벤처투자 대표에 자본시장 출신 인사가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모태펀드 초기와 상황이 다르다며 공공성 강화를 요구하는 흐름도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공개된 국회예산정책처의 정책 연구용역보고서가 주목을 끈다. 보고서는 “민간투자 촉진 효과가 최근 10년 사이 급감해 모태펀드의 순기능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모태펀드 기능 재조정’을 요구했다.
3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모태펀드는 정부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벤처캐피털에 출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기업에 직접 투자하기보다는 개별펀드(투자조합)에 출자하는 방식이다.
직접적인 투자위험을 감소시키면서 수익을 내려는 의도다. 펀드를 위한 펀드(fund of funds)로 불리는 이유다.
모태펀드는 매년 확대됐다. 지난해 펀드규모는 8조8968억원이다. 2005년부터 2023년까지 국내 모태펀드 출자금액은 총 17조원을 넘었다. 민간주체의 출자금도 22조원 이상을 기록해 2배 가까이 민간자금을 유입한 효과가 있었다.
모태펀드 출자규모 확대에 따라 벤처캐피탈(VC)의 신규 투자조합 결성도 늘었다. 2019년 신규 VC조합수는 170개였다. 2021년 404개로 최고를 찍었다가 지난해 290개로 점차 줄었다. 반면 신규비중은 줄었지만 운영되는 조합수는 같은기간 920개에서 1957개로 늘었다.
VC 신규조합의 출자자 비중을 살펴보면 모태펀드와 기타정책금융(성장금융 등)을 포함한 정책펀드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비중이 줄어들긴 했어도 2005년 이후 모태펀드는 국내 벤처투자시장의 발전을 견인해 온 셈이다.
◆모태펀드 순기능 약화 돼 =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에 모태펀드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모태펀드와 민간출자 자금의 매칭 비율이 낮아지는 추세다. 매칭 비율이 제도 도입 초기에는 2배 이상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1.0~1.7배 수준으로 하락했다.
민간투자 촉진 효과가 급감한 것이다. 2014년 이전에는 모태펀드가 1% 증가하면 총 민간자금이 0.845% 늘었다. 민간 참가자 중 금융기관은 1.066%, 연기금과 공제회는 1.239% 투자를 확대했다. 모태펀드가 민간자금의 투자를 촉진시켜 벤처투자생태계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결과다.
그러나 2014년 이후부터는 모태펀드의 민간자금 투자 유발효과는 크게 낮아졌다. 투자자별로 미치는 영향도 미미했다.
2014년 이후 모태펀드가 1% 증가할 때 총 민간자금은 0.282% 느는데 그쳤다. 2014년 이전과 비교하면 1/4 수준으로 낮아졌다. 일례로 연기금과 공제회 투자유발 계수 추정치는 0.919로 2014년 이전(1.239)의 2/3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과정에서 모태펀드는 안정화 투자성향을 강화했다. 업력이 짧은 초기단계 기업보다 중기와 후기 단계 벤처기업에 투자를 집중했다. 업력별 투자비중을 살펴보면 초기기업 비중이 2019년 32.5%에서 2023년 24.6%로 줄었다. 반면 후기기업은 26.2%에서 37.8%로 늘었다. 국내 벤처기업의 스케일업을 도모한다는 게 명분이었다.
◆효율적 운영방안 마련 = 보고서를 작성한 배승욱 벤처시장연구원 대표는 모태펀드 역할과 기능 재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배 대표는 “단기적으로 현재 출자규모를 유지하면서 모태펀드의 효율적 운영방안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모태펀드의 역할을 민간자금 마중물에서 시장실패 보완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모태펀드는 정책적인 실패가 발생하는 낙후지역이나 해외 및 ESG 분야에 선택과 집중하고 그 밖에 민간이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과감하게 그 역할과 기능을 민간모태펀드에게 넘겨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보다 다양한 민간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감한 규제완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