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부채의 덫, 재정·통화정책 발목잡나

2024-07-04 13:00:24 게재

고금리 장기화 내수부진, 반쪽 경기회복

기준금리 인하·재정지출 확대 목소리 커

경제 3주체 부채 급증, 정책전환 제한적

경제 3주체가 떠안은 막대한 부채가 적정한 시기에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출은 살아나고 있지만 내수가 부진해 반쪽 경기회복에 그치는 상황에서 적절한 재정 및 통화정책이 필요하지만 과도한 부채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3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 5월 한국은행 전망치(2.5%)보다 높다. 김병환 기재부 제1차관은 “최근 수출 호조세를 감안해 전망치를 상향했다”고 했다. 실제 수출은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9개월 연속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 정부는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63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내수부문은 전망이 부정적이다. 민간소비는 기존대로 1.8% 증가를 전망했고, 설비투자(2.0%)와 건설투자(-1.2%)는 기존 전망치를 유지하거나 낮췄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수출이 살아나면서 당장 경제지표상 수치는 좋아질 수 있지만, 내수가 살지 않으면 온전한 경기회복세로 보기 어렵다. 지속가능성도 제한적이다. 한은도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올해보다 낮은 2.1%로 내다봤다.

현재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내수부진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금리 장기화다. 특히 가계대출 평균금리가 4~5%대를 장기간 유지하면서 가계의 소비여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연구기관, 기업 모두 기준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6월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고금리 기조가 내수 부진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금리인하가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었다”면서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중소기업계도 최근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기준금리 인하라는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전환하는 데 가계부채 등 과도한 신용레버리지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물가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한은이 통화정책 결정에서 금융안정도 고려해야 하는데, 현재 가계 및 기업대출 상황을 고려하면 완화적 통화정책이 부채를 더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은에 따르면 가계 및 기업대출 규모는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직전인 2020년 1분기에 비해 각각 16.1%, 51.9% 늘었다. 올해 1분기 가계 및 기업대출 연체율도 각각 0.98%, 2.31%로 커졌다. 가계와 기업의 원리금 상환부담을 완화하려면 금리를 내려주는 정책이 필요하지만, 금리를 내리면 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채가 통화정책 전환의 발목을 잡는 셈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금리 장기화로 가계 이자부담이 이어지고 있다”며 “성장률 달성은 내수 소비나 투자 활성화에 달렸는데 얼마나 적절한 시점에 기준금리를 인하하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역학부 교수는 “가계와 기업부채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담보가치가 확실하기 때문에 금융안정성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통화정책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부채 급증도 재정정책 전환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일반정부부채는 2020년 945조1000억원에서 2022년 1157조2000억원으로 불과 2년새 22.4% 급증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토론회에서 “왜 25만원 주느냐, 10억이나 100억씩 줘도 되는 것 아니냐”며 야당의 대국민 지원금 정책을 비난하면서 재정건전성 우려를 드러냈다.

이처럼 막대한 정부부채로 인해 정작 적극적 재정지출로 내수를 끌어올려야 할 때 마땅한 수단이 없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정부는 3일 자영업자 대출 상환 연장과 다양한 소상공인 지원대책을 내놨지만 정작 재정을 통한 직접지원은 1조원 안팎에 그치고, 사실상 은행과 금융권에 떠넘기는 정책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교수는 “현 상황에서 건전 재정을 유지하려는 정책은 맞다”면서도 “내수부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통화·재정정책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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