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교훈과 반대로 가는 여당 당권주자들
22대 총선, 중도층·수도권·청년층에서 밀리며 참패
전당대회 앞두고 보수층·영남권·노령층 구애 ‘급급’
국민의힘은 22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층)에서 밀린 게 주요 패인으로 꼽혔다. ‘중수청’ 지지를 회복하는 게 국민의힘 제1과제로 부각됐다. 하지만 7.23 전당대회에 나선 당권주자들은 또다시 보수층·영남권·노령층 구애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책임당원 80%+여론조사 20%인 전당대회 룰 탓이기는 하지만 당 외연 확장을 통해 재집권 토대를 다져야 할 새 대표가 출발도 전에 보수층·영남권·노령층 표심에 발목 잡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대선과 달라진 ‘중수청’ 표심 = 4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22대 총선에서 수도권 122석 가운데 19석(서울 11석, 경기 6석, 인천 2석)을 얻는데 그쳤다. 민주당은 102석을 챙겼다. 수도권에서만 80석 넘는 의석차가 생긴 것. 2년 전 20대 대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수도권에서 809만표를 얻어 이재명 후보(828만표)와 박빙 승부를 펼쳤다. 2년 만에 수도권 민심이 급변한 것이다.
방송 3사(KBS MBC SBS)의 22대 총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연령층에서 국민의힘 지역구 후보는 35.4%를 얻어 민주당 후보(59.3%)에 크게 뒤졌다. 30대에서도 국민의힘 지역구 후보는 41.9%를 기록하면서 민주당 후보(52.8%)에 밀렸다. 20대 대선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는 윤 후보와 이 후보가 20·30대 연령층에서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20·30대 표심도 불과 2년 만에 민주당 지지로 급격히 바뀐 것이다.
한국갤럽 정례조사(6월 25~27일, 전화면접, 이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윤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25%를 기록했다. 보수층에서는 45%였지만 중도층에서는 19%에 그쳤다.
22대 총선 결과와 윤 대통령 국정지지도를 보면 국민의힘은 ‘중수청’ 표심 회복이 시급한 처지다. 당권주자들도 ‘중수청’ 표심 회복의 절박함을 공감한다. 한동훈 후보는 지난 2일 ‘체인지 5분 비전 발표회’에서 “승리를 위해 우리 당의 외연을 확장하겠다. 수도권, 중도, 청년에게 매력 있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매일 영남 찾는 후보들 = 하지만 전당대회를 20여일 앞둔 당권주자들은 ‘중수청’보다는 보수층·영남권·노령층 표심잡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전당대회 결과에 80% 반영되는 책임당원의 상당수가 영남권과 노령층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영남권 당원이 전체의 40%에 달한다. 60세 이상 당원은 35%로 추산된다. 책임당원들은 성향적으로 보수층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나경원 원희룡 윤상현 후보는 3일 일제히 대구를 찾아 당원들을 만났다. 이들은 지난달 24일 선거운동 시작 이후 열흘 동안 3~4일 이상씩 영남권을 찾고 있다. 보수 텃밭인 영남권에서 ‘한동훈 대세론’을 흔들어보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TK지역 의원은 “한 후보는 TK에서 일정정도 팬덤이 형성돼 있다. 경쟁자들로선 최대 표밭인 영남에서 한 후보를 흔들지 못하면 역전은 어렵다는 판단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후보는 이날 국민의힘 실버세대위원회 운영위원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실버세대위원회는 65세 이상 원로당원들의 모임이다.
보수층 표심을 의식한 ‘한동훈 좌파 공세’도 끊이지 않는다. 친윤 인사들은 “한 후보는 강남좌파다” “한 후보 주변에 좌파가 많다”는 식의 공격을 퍼붓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달 30일 SNS를 통해 “총선 참패 주범이 또다시 얼치기 좌파들 데리고 대통령과 다른 길 가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 후보 주변 인사들을 ‘얼치기 좌파’로 지목한 것이다.
후보들은 보수층 표심을 겨냥해 핵무장론까지 꺼내들었다. 나 후보는 지난달 25일 “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TK지역 의원은 3일 “후보들이 말로는 ‘중수청’을 외치면서 보수층과 영남 표심에만 매달리고 있다. 총선 민심이 던진 교훈과 완전히 반대로 가는 꼴이다. 이래서 전당대회가 재집권 비전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