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 속에 들어 있는 ‘일본의 시’를 만나다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일본 시인/오석륜 지음/청색종이/1만6000원
시는 역류했다. 한반도 문화가 현해탄을 넘어 일본으로 넘어가던 게 메이지 유신을 넘어서면서 빨리 서구화된 일본의 것이 한반도로 몰려왔다.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를 침탈해 하나의 나라로 치부되던 시절에도 문화는 방향을 찾아 흘러갔다. 그 중에 시가 있다. 문자와 문학이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흘러들어간 경로의 역전이었다.
‘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일본 시인’은 일본의 대표적인 시와 시인들을 추적하면서 우리나라 근현대시들을 만나게 되는 발자취를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보여준다. 일본의 대표적인 시들이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네 누군가의 시들 속에 꿈틀거리고 있음을 느낄 정도다.
저자는 한국에서 새로운 시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최남선 이광수 주요한 오상순 김소월 정지용 백석 등을 짚어내며 “당시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일본 시인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널리 알리고 싶은 일본 시인 10명을 추려 펼쳐보였다. 시마자키 도손은 일본 문학사에서 근대시를 연 시인이다. “이제 갓 틀어 올린 앞머리/사과나무 가지 사이 보일 때/앞머리에 꽂은 꽃 비녀가 꽃다운 그대라고 생각했네”. 도손의 대표시 ‘첫사랑’은 도전이었다. 연애가 터부시되던 시절에 그는 사과밭 사이에서 ‘연분홍색 가을의 열매’를 건네준 ‘부드럽게 하얀 손’을 노래했다. 소설가 김동인은 자신을 도손의 제자라 했다. 그의 소설 속에 비친 낭만적 서정시가 묻어있던 이유다.
일본인의 국민 시인 기타하라 하큐슈는 모더니즘을 알린 정지용 시인과 맞닿아 있다. 이상주의적 경향과 독특한 시적 세계를 펼친 다카무라 고타로와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 하기와라 사쿠타로, 근대시를 현대시로 변용시킨 니시와키 준자부로 역시 일본 시의 역사를 관통하며 도전과 실험을 보여줬다. 백석 시인에게 영향을 준 ‘일본인이 좋아하는 다나카 후유지’는 ‘향수의 시인’이다. 자연이나 생활에 바탕을 둔 그의 시작은 습작 속에서 갈 길을 찾는 백석의 나침반이기도 했다.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작품을 다수 남긴 미요시 다쓰지는 충실한 정서, 섬세한 감격, 풍부한 서정성, 프랑스에서 온 주지적 경향까지 “한국인의 정서와 잘 어울리는 일본 시인”이다.
일본 전후 시단의 키를 잡았던 시 잡지 ‘황지’의 이론적 지도자인 아유카와 노부오는 태평양 전쟁으로 단절된 현대시를 이론과 창작으로 재건하는 데 헌신적인 역할을 해냈고 대표적인 여류시인인 시라이시 가즈코는 ‘자유분방’한 다양한 스타일로 감각적인 시를 생산해 냈다. 해외시인과의 교류는 ‘일본의 풍토로부터 초월한 신화적인 시적 세계를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자질을 개화시켰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그 해외 시인엔 우리나라 김광림 시인도 들어가 있다.
다니카와 슌타로는 신경림 시인과 함께 시집을 냈다. 카멜레온처럼 여러 경향의 작품을 구사하는 이색 시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저자는 60여편의 일본 대표 시인의 대표작을 직접 한국어로 번역했고 각 시에 자세한 주역을 달아놨다. 그는 “다니카와의 시가 한국인에게 읽히듯이 한국인 시인의 시도 일본인 독자에게 읽히기를 기대해 본다”고 했다. 일본과 우리나라 대중들이 상대국 시를 통해 교감하길 기대하는 마음이 이 책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는 지금 일본 문학사에서 일본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작품을 읽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문학의 본령이 시라는 점에서도, 시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저자인 시인 오석륜 교수는 인덕대 비즈니스일본어과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9년 ‘문학나무’로 등단했다. 시집 ‘종달새 대화 듣기’ ‘파문의 그늘’ 등과 산문집 ‘진심의 꽃 – 돌아보니 가난도 아름다운 동행이었다’, 번역서 ‘일본 시인 한국을 노래하다’ ‘철 늦은 국화 - 다시 읽는 일본 단편소설 걸작선’ 등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