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법무부의 이중잣대
지난달 28일 법무부가 기자들에게 예정에 없던 공지문을 보냈다. 대변인실 명의의 공지에는 “언론기사에서 대통령의 ‘거부권’과 ‘재의요구권’이라는 용어가 혼재돼 사용되고 있다”며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이라는 용어는 없고 ‘재의요구권’만 있을 뿐”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거부권’이라는 용어가 헌법이 규정한 적법한 입법 절차인 ‘재의요구권’에 대해 자칫 부정적인 어감을 더할 수 있어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잦은 ‘재의요구권’ 행사에 국민 여론은 ‘부정적’이다. 지난 1월 윤 대통령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국회에 재의요구한 직후 이뤄진 전국지표조사(NBS)를 보면 응답자의 65%가 ‘잘못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긍정적인 답변은 23%에 불과했다.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재의요구에 대해서도 부정평가가 64%에 달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2년여 동안 14차례나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1번, 박근혜 전 대통령 2번, 노무현 전 대통령 6번, 노태우 전 대통령 7번 정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한 적이 없고 김대중,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중 여소야대 상황을 겪었지만 한 차례도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전임 대통령들이라고 국회에서 넘어온 법안에 불만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재의요구를 자제한 건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서였을 터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등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한 법안들을 보면 헌법에 위배되거나 국민 이익에 반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도 많다. ‘채 상병 특검법’의 경우 찬성여론이 70%를 웃돈다. 그런데도 잘못된 용어 때문에 부정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국민을 무시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법무부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가 ‘헌법이 규정한 적법한 절차’라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역시 헌법이 규정한 국회 권한인 탄핵소추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이 4명의 검사에 대한 탄핵을 발의한 것에 대해 법무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형사사법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법무부는 앞서 처남 마약사건 수사 무마 의혹 등 각종 비위 의혹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직무대리와 관련해 ‘탄핵제도는 신중하게 사용돼야 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기도 했다.
국회 탄핵소추가 엄격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건 옳은 말이다. 대통령의 재의요구 또한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우리나라의 법률과 사법을 관장하는 행정기관이다. 이중잣대를 가져서는 곤란하다.
구본홍 기획특집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