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판 의사, 업무상과실치사 첫 적용

2024-07-05 13:00:30 게재

경찰 ‘롤스로이스 청담 사건’ 불법처방에

‘람보르기니 사건’에는 약사법 위반 적용

경찰이 이른바 약물에 취해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에게 마약류를 불법처방한 의사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송치했다.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의사에게도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정한 첫 사례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마약범죄수사대는 최근 서울 강남의 한 병원장이었던 염 모씨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추가송치했다. 검찰은 또 ‘람보르기니 사건’의 운전자에게 전신마취제를 투약한 또 다른 의사와 병원 관계자를 약사법 위반 등으로 송치했다.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 = 지난해 8월 염씨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 처방을 받은 신 모씨가 약에 취한 채 운전을 하다 보행자인 2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했다.

신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6단독은 올 1월 신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신씨 항소심은 현재 진행 중이다.

경찰은 신씨에게 마약류를 불법처방한 염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여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염씨는 마약범죄와 함께 마취 상태인 여성 환자들을 불법 촬영하는 등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지난달 징역 17년을 선고한 바 있다.

애초 염씨에게는 신씨의 교통사고에 대해 직접적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마약류를 불법 처방했을 뿐 사고를 낸 것은 신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염씨가 의사로서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병원 안팎의 폐쇄회로(CC)TV를 살펴본 경찰은 염씨가 신씨에게 장시간 여러 종류의 향정신성의약품을 불법 투약했고, 신씨를 깨운 뒤 5분 만에 퇴원시킨 것을 확인했다. 신씨는 병원을 나선지 5분도 안돼 사고를 냈다.

경찰은 염씨 병원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불법으로 투약받은 환자 중 5명이 수면마취 상태에서 퇴원하자마자 최대 13차례나 차량을 운전한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은 “현행 의료법과 환자안전법, 임상지침 등에 규정된 ‘환자의 안전한 귀가’ 등 관리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신씨의 약물 운전이 예견되는 상황에서도 퇴원시켜 사망사고를 일으키게 했다”며 “검찰과 수차례 논의했고 수사를 보완했기에 법원도 사건의 심각성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정 대신 전신마취제 = 지난해 9월 람보르기니 운전자인 30대 홍 모씨가 주차 시비 중 흉기를 휘두르는 일이 발생했다. 수사하던 경찰은 의사 A씨가 회당 10만~20만원을 받고 전신마취제인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해준 사실을 확인했다. 에토미데이트는 향정신성의약품과 같은 효능을 가졌지만 마약류로 지정되지 않았다. A씨가 치료 외 목적으로 환자들에게 투약했다고 해도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식약처에서 처방 및 투약을 추적, 감시하지만 에토미데이트와 같은 전문의약품은 별개다. A씨는 이런 점을 악용했고, 환자 75명에게 8900차례나 투약했다. 돈으로 따지면 12억원 어치다.

경찰은 관련법을 따져 들어갔다. 경찰은 A씨가 질병 치료 목적없이 의약품을 제조·투약해 ‘무면허 의약품 판매행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봤다. 의약품은 약사만 조제·판매하도록 하고 있다. 의사는 처방만 하고 있는데, 병원 내 질병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 의약품의 조제·판매 권한을 갖고 있다.

약사법은 무자격자 의약품 판매 금지 규정을 위반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약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신성철 마약수사대장은 “유사 사건을 예방하기 위해서 도로교통법상 수면마취 후 운전제한시간을 명시하는 규정이 필요하다”며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은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 수준으로 지정·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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