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정상들, 결속과 이탈 시험대
우크라전· 중국 안보도전 등 논의 … 헝가리 오르반은 러중 순방 엇박자
이번 회의는 전쟁 3년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에 대한 ‘장기 지원 패키지’ 마련이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특히 연간 400억 유로(430억 달러·한화 60조원) 규모의 군사지원금 지출에 관한 정상급 합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400억 유로를 ‘지원 최소 기준선’으로 정해 회원국별 국내총생산(GDP)에 따라 군사지원을 분담하자고 제안했다. 이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등 각국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보장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정상간 합의가 이뤄지려면 헝가리를 제외한 31개국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친러 성향 헝가리는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에 반대해 이 계획에서 빠지는 대신 나토의 의사결정에 훼방을 놓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지난 5일 러시아 방문에 이어 8일에는 중국을 찾아 유럽연합(EU)이나 나토 등 서방 주류의 행보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뒤 엑스(X·옛 트위터)에 “시 주석은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평화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면서 “평화 임무는 계속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오르반 총리에게 “조기 휴전과 정치적인 해결책 모색은 각 당사자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밝혔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보도했다. ‘조기 휴전’은 EU를 비롯한 서방에서 금기시하는 표현이다.
오르반 총리는 얼마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대해 EU에서 비판이 나왔는데도 이번 중국 방문을 강행했다. 그동안에도 우크라이나 지원, 대러시아 제재 등에서 EU와 사사건건 충돌했던 오르반의 이번 행보에 EU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더군다나 헝가리는 올 하반기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이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엑스를 통해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병원 등을 겨냥한 대규모 공습을 비판하면서 “러시아 전쟁범죄에 연루된 모든 이는 책임지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 EU 지도부는 물론, 스웨덴과 독일 등 EU 회원국 차원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EU의 잡음이 나토 결속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금 뿐만 아니라 장관급에서 사전 합의한 우크라이나 안보지원과 훈련 조정 임무 출범도 공식화된다. 나토가 각국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계획을 조율하고 나토 회원국에서 이뤄지는 우크라이나군 훈련 감독 등을 직접 맡는 형태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바라는 나토 회원국 가입에 관한 진전된 약속은 나오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은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나토 가입에 관한 단정적인 표현을 공동선언문에 명시하는 데 부정적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는 이번 정상회의가 창설 75주년(1949년 4월 4일)을 맞아 열린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맹 결속’을 부각하려 애쓰는 분위기다.
그러나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가능성이 제기되고 주요 회원국인 프랑스는 조기 총선으로 정치적 불안정성이 고조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정상회의가 열리게 됐다.
일부에서는 정상회의 자체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 이목이 더 쏠릴 것이란 관측도 있다. 지난달 말 대선 TV 토론 이후 인지력 논란으로 사퇴 압박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바이든의 이럭수일투족이 관심사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유럽 회원국들 입장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저지해야 할 바이든 대통령의 불안한 입지는 걱정거리다.
한편 이번 정상회의에는 3년 연속 나토의 인도·태평양 4개국 파트너(IP4)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도 초대됐다. 윤 대통령은 11일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IP4 정상회의 일정을 진행한 뒤 본회의인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윤 대통령은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로이터통신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북한은 명백히 국제사회의 민폐로, 러시아는 결국 자신에게 남북한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인지 잘 판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우리는 이 접근 방식에 반대한다. 우리는 이 접근 방식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외교부 역시 8일 정례 브리핑에서 “나토는 냉전의 산물이자 세계 최대의 군사 연맹(동맹)”이라며 “한편으론 자신이 지역성·방어성 조직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끊임없이 경계를 넘고 권한을 확장하며 방어 구역을 넘어 대결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