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제정 힘 받을까…‘국회 과반’ 야당도 플랫폼법 입법 본격화
올 초 정부가 추진하다 업계 반발에 ‘주춤’
지난 5월 한기정 공정위원장 ‘재추진’ 발표
민주당 김남근·박주민 등 플랫폼법 대표발의
플랫폼산업 속도 빨라 기존 법만으론 ‘한계’
정부가 지난 5월 ‘재추진’을 공식화한 플랫폼 독점규제 법안 제정이 힘을 받을 모양새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구글·애플·네이버·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들의 독과점·불공정 행위를 규제하는 ‘플랫폼법’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9일 공정위와 국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김남근·박주민 의원은 지난 5일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법’과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 및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같은 당 민형배·오기형 의원이 발의한 법안까지 합치면 최근 한 달 사이 비슷한 법안이 4개 발의됐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비슷한 법안 추진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업계 반발과 총선을 앞둔 국민의힘 내부에서 ‘득표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이견이 생기면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사전지정제가 뼈대 = 야당이 발의한 법안은 ‘사전지정제’와 ‘입증책임 전환’ 도입을 뼈대로 한다. 독과점 지위에 있는 플랫폼 사업자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전에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고, 반칙 행위를 하면 즉각적인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규제한다는 내용이다. 반칙 행위에는 자사우대, 끼워팔기, 경쟁 플랫폼 이용 제한(멀티호밍), 최혜대우 요구 등이 포함된다. 공정위가 불법행위가 있다고 판단하면 고의·과실이 없다는 입증책임은 플랫폼 기업이 지도록 했다.
공정위도 ‘플랫폼 경쟁촉진법’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지난 5월16일 “플랫폼 사업의 특성상 독과점이 고착되면 승자독식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경쟁 회복도 어렵다”며 “소수 독과점 플랫폼의 반칙 행위를 효과적으로 규율하고 다양한 플랫폼이 자유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환경 조성을 위해 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 제재 무력화시킨 플랫폼 ‘속도’ = 공정위가 온라인 플랫폼법 제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현 공정거래법 체제로는 플랫폼을 규율하는 데 한계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불공정행위를 조사해 시정명령을 내려도 법원 판결까지 수 년이 걸려 최종 판결이 확정될 즈음엔 이미 독과점이 진행돼 혁신기업 성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 토종 앱 마켓인 ‘원스토어’의 소멸사례가 상징적이다. 원스토어가 시장을 넓히자 ‘구글플레이’를 운영하는 구글은 모바일 게임사들이 게임을 구글플레이에만 독점적으로 팔도록 압력을 가했다. 공정위는 2018년 조사에 착수한 뒤 5년 뒤인 지난해 4월에야 과징금 421억원을 구글에 부과했다. 하지만 원스토어는 이미 모바일 시장에서 밀려났다. 원스토어 점유율은 2016년 15~20%에서 2018년 5~10%로 급감하고 사실상 소멸했다.
최근 공정위가 심사보고서를 보낸 구글의 ‘유튜브 끼워팔기’ 역시 마찬가지다. 유튜브가 프리미엄(월 1만4900원)을 구독하면 ‘유튜브뮤직’을 함께 제공한 것이 공정거래법이 규제하는 ‘끼워팔기’에 해당한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위가 조사착수 뒤 1년6개월 만에 검찰의 공소장 격인 심사보고서를 냈지만, 이미 시장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변했다. 유튜브뮤직은 국내 음원 시장에서 토종 멜론을 앞지르고 사상 처음으로 1위 자리를 꿰찼다. 반면 멜론 등 토종 음원플랫폼사는 고사위기에 몰렸다. 운영사인 구글은 공정위 제재가 결정되더라도 법원소송을 통해 수년을 시간을 더 끌 수 있다. 결국 공정위가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리더라도 ‘실효도 없는 제재’가 될 수 있다. 그만큼 플랫폼산업의 변화속도나 양태는 기존 공정거래법만으로는 ‘공정한 시장’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이 공정위 판단이다.
◆플랫폼 독점 규제 선두주자는 = 이미 유럽연합(EU)은 지난 3월부터 빅테크 기업을 규제할 디지털 시장법(DMA)을 시행하고 있다. 시장지배적인 플랫폼 기업들을 ‘게이트키퍼’로 사전에 지정하고 불공정 행위가 생기면 바로 제재하는 법이다. EU는 알파벳(구글), 바이트댄스(틱톡),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메타(페이스북) 6개사를 ‘게이트키퍼’로 지정했다. 야당 발의 법안들은 EU의 법안을 본따 만든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 2월 온라인 플랫폼법 정부안을 발표하려 했으나, 플랫폼 업계의 극심한 반발에 부닥치자 보류했다.
21대 국회 때도 야당 의원들 주도로 비슷한 법안이 여러 개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하지만 지난 5월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플랫폼법 재추진’을 공식화하면서 올해 법 제정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달부터 국회가 본격 개원하면 여야의 입법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