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공수처, 곳곳 걸림돌

2024-07-12 13:00:36 게재

‘구명로비’ 의혹 수사 부담 커졌는데

‘도이치 공범 변호’ 검사 회피 신청

주요 관련자 통신영장 잇따라 기각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가 최근 사건 회피신청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수처가 수사 외압 의혹 관련자들의 통신 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청구한 통신 영장은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구명로비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이 공개되며 ‘수사 외압’에 더해 ‘구명 로비’ 의혹까지 공수처의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졌지만 잇단 변수로 수사에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 소속 A검사는 지난 4일 임 전 사단장에 대한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해 공익신고한 김 모 변호사에 대한 공수처 조사 이후 수사에서 빠지겠다며 회피신청을 했다.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의 당사자인 투자자문사 블랙펄인베스트먼트 전 대표 이 모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과거 변호사 시절 변호를 맡았다는 이유에서다.

공수처는 “해당 수사검사는 사건 관련자를 조사하기 전까지 이씨에 대한 수사내용을 알지 못했다”며 “그 사실을 알고 회피신청을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수처 수사4부 검사인원은 총 6명으로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뿐 아니라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대한 감사원의 표적감사 의혹 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수사 인력이 부족한데 그동안 채 상병 사건을 맡아온 검사의 수사 활동에 제한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공수처 인력 구조상 당장 충원도 쉽지 않다. 현재 공수처 검사는 19명으로 정원 25명에 못 미친다. 이에 따라 공수처는 지난달 부장검사 1명과 평검사 3명 충원에 나섰지만 아직 공모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수사 일선에 투입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계좌를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이씨가 임 전 사단장 구명운동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담긴 녹취가 나오면서 ‘수사 외압’에 ‘구명 로비’ 의혹까지 더해졌지만 공수처는 제한된 인력으로 수사를 넓혀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셈이다.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 서울중앙지검이 10여명의 검사를 투입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도 첫 기소까지 10개월 가까이 걸린 것을 고려하면 채 상병 사건에 대한 공수처의 신속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수사 대상은 당초 국방부에서 대통령실, 윤 대통령 부부로까지 확대된 상태다.

공수처는 수사 외압 의혹 관련자들의 통신 기록을 확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의 통신기록은 채 상병 사건 수사에 국방부와 대통령실 등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은 물론 최근 불거지고 있는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을 규명할 중요한 단서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공수처가 청구한 통신 영장을 잇따라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물들의 경우 공수처가 여러 차례 통신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연거푸 기각된 것으로 전해졌다.

채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다 순직한 건 지난해 7월 19일로 곧 1주기가 된다. 통상 1년인 통신기록 보존기간도 얼마 남지 않아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수처 관계자는 “통신 영장 신청 및 기각 여부는 수사중이라 알려줄 수 없다”며 “제한된 인원이지만 증거 자료 확보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공수처는 지난 5월 이른바 ‘정종범 메모’의 당사자인 정종범 해병대 2사단장을 방문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사단장은 부사령관이던 지난해 7월 31일 열린 현안 토의에 참석해 ‘누구누구 수사 언동하면 안 됨’ 등 당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메모한 인물이다. 이를 두고 이 전 장관이 대통령실 요구에 따라 혐의자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 사단장은 지난해 군검찰에 출석해 자신의 메모에 대해 이 전 장관의 지시를 적은 것이라고 했다가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발언이라고 진술을 바꾼 바 있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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