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대국 일본, 자동차 이은 최대 수출품

2024-07-15 13:00:16 게재

외국인, 상품 구매에서 체험형 관광으로 진화 … 엔저 영향에 일관된 관광진흥정책 결실 맺어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발표한 ‘여행 및 관광개발 순위’에서 일본은 세계 3위에 올랐다. 2021년 사상 처음으로 1위에 올랐지만 소폭 후퇴했다. 상위를 차지한 일본 관광 경쟁력의 원천은 자연자원과 문화자원, 교통 인프라와 서비스 등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8위)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한국은 14위로 처졌다.

일본이 관광대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일본 언론은 외국인 관광객이 소비하는 돈이 전자부품과 철강 등을 넘어서 수출품목 2위에 해당한다며 흥분했다. 외국인 관광객 급증은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노동력의 절대 부족이라는 힘든 과제도 있지만, 일본내 소비침체를 방어하고 해외로 진출하려는 기업의 활로를 열어주는 역할도 한다.

2029년 외국인 6000만명, 130조원 소비

일본정부 관광국에 따르면, 올해 3월 일본을 찾은 외국인은 사상 처음 월간 기준 300만명(308만1600명)을 넘어섰고, 통계가 나온 5월까지 석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지면 올해 연간 외국인 방문객은 3000만명을 훌쩍 넘어 400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외국인이 소비하는 금액도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1분기 누적 소비는 1조7500억엔(약 15조20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역대 최고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고 가정한 올해 연간 환산액은 7조2000억엔(약 62조6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10년 전에 비해 5배 증가한 규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외국인 관광객의 일본내 소비 규모는 단일 수출품목 가운데 자동차에 이어 2위 수준이다. 지난해 일본의 자동차 수출은 17조3000억엔(약 150조5000억원)으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관광산업이 지난해 수출 2위 품목인 전자부품(5조5000억엔)과 철강(4조5000억엔) 등 전통적인 주력 수출품목을 넘어섰다.

소비의 질적인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외국인 1인당 일본내 소비지출은 2019년 대비 41.6% 증가해 약 20만8800엔(약 181만6000원)에 이른다. 소비지출이 늘어난 데는 엔저로 인한 상대적 가성비가 우선 꼽힌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언론은 외국인의 일본내 소비패턴 변화에 주목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코로나19 이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도쿄 긴자의 고급백화점에서 물건을 쓸어 담던 모습은 사라졌다”면서 “특색있는 음식점 순례와 테마기행 등 체험형 관광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일본정부는 2029년 외국인 관광객 6000만명을 넘어서고, 일본내 소비는 15조엔(약 130조5000억원)에서 많게는 20조엔(약 174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의 전기차 공세 등으로 일본 자동차 수출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직면한 가운데, 관광산업이 일본 수출품목 1위에 오를 날도 머지 않았다는 전망이 나올 법하다.

다이이치생명 경제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 발생하는 음식 및 숙박, 각종 서비스 소비지출 전체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7.9%에서 2029년 16%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관광 트렌드 변화 4가지

닛케이비즈니스는 트렌드 변화로 △상품 소비에서 체험형 소비 △중국인 중심에서 다국적 분산 △지방으로의 이동 △일본 마니아층 증가 등 4가지를 꼽았다.

도쿄 긴자에 있는 한 회전스시 전문점은 스시와 결합한 새로운 놀이문화로 외국인을 끌어들이고 있다. 스시 접시를 통해 경품에 당첨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외국인이 값싸게 음식도 먹고 게임을 즐기듯 한다고 소개했다. 도쿄에 있는 ‘시부야 타츠야’에 가면 2층부터 4층까지 도쿄를 상징하는 시부야 십자형 교차로의 광경을 한눈에 내려다 보면서 음료를 즐기는 프로그램이 시간당 1650엔(약 1만5000원)부터 불티나게 팔린다. 사소한 것 같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일본 체험의 하나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러한 체험형 관광은 외국인을 지방으로 이끄는 요인이다. 도쿄와 오사카 등 기존 관광지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까지 외국인의 발길이 이어진다. 2019년 대비 지난해 지방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동북지방이 59% 늘었고, 시코쿠(23%)와 주코쿠지방(19%)도 크게 늘었다.

크로아티아에서 온 한 관광객은 지난해 5번째 일본을 찾았다. 일본의 자연경관이 마음에 들어 최근 방문 때는 오토바이를 빌려 규슈지방을 일주하기도 했다. 이 관광객은 닛케이비즈니스와 인터뷰에서 “일본은 온천과 전통주가 좋지만, 무엇보다 활화산인 아소산을 비롯해 규슈의 아름다운 자연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심지어 ‘화장실 투어’도 대기자가 줄을 섰다. 도쿄 시부야구는 2018년부터 관내 특색있는 공중화장실 17곳을 개·보수해 ‘더 도쿄 토일렛’이라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투어에 참여한 홍콩에서 온 베니씨는 “주변 환경과 어울리는 디자인이 멋지다”고 했다.

이밖에도 외국인 대상 체험관광은 다양하다. 일본음식과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비롯해 △지방도시 및 농촌 체험 △스포츠 투어 △일본 전통주 양조장 등 체험 △일본 애니메이션 체험과 이벤트 △지역별 축제 및 전통춤 체험 등 수없이 많다.

체험형 관광 증가는 일본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니아층’을 양산한다. 일본 관광국에 따르면, 일본을 2회 이상 방문하는 사람이 전체의 70%를 넘고, 10회 이상 방문하는 외국인도 17%에 이른다. 닛케이비즈니스는 ‘마니아층’은 자국으로 돌아가서도 일본을 알리는 홍보맨이 된다고 했다. 다만 외국인 방문 급증으로 일본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이른바 ‘관광 공해’ 문제가 심각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 저하가 논란이다.

기업은 관광객 대상 비즈니스모델 개발

외국인 관광객 급증은 기업 입장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1925년 나고야에서 창업한 된장우동 전문점 ‘야마모토야’에서 5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아오키 히로노리씨는 “저출생이 빨라지는 일본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입맛을 잡고, 해외로 진출하지 않으면 음식점은 존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오키 대표는 2016년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물려받고, 무슬림 ‘할랄’ 등 음식의 다양성을 고민했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음식점이 결실을 맺기까지 외국인 관광객과 유학생의 역할이 컸다. 그들이 구전을 통해 자국에 자연스럽게 홍보해 주면서 사업을 확대하고, 지난해 7월 홍콩에 점포를 열기도 했다.

기후현에 있는 후쿠다공업은 공업용기계칼을 만드는 회사다. 이 회사는 2022년 오랜기간 닦아온 공업용칼 제조 기술력을 살려서 다이몬드에 맞먹는 강도를 갖는 소재로 주방용 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22년 클라우드펀딩을 통해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5일간 1450개의 제품을 완판했다. 지난해는 일반 판매를 시작해 외국의 프로 요리전문가들한테서도 높은 품질을 인정받고, 지금은 수요에 맞추기 힘들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자사의 제품을 알려 세계로 나아간 사례는 화장실 변기 등을 만드는 ‘TOTO’다. 이 회사는 외국인이 일본을 많이 찾기 전부터 이들을 통해 홍보하는 전략을 택했다. 토토는 2017년 온수로 세정하는 좌변기를 판매하기 위해 관광객을 대상으로 집중 홍보했다. 외국인이 머무르는 호텔과 공항, 공공시설 등에 온수세정기를 집중 설치하고, 편하고 위생적인 경험을 통해 구전 홍보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 때 미국에서는 화장실용 휴지가 부족한 사태를 맞았는데, 이 때 토토의 세정기가 각광을 받았다. 지난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 회사의 판매대수는 전년보다 120% 이상 늘었다.

미야자키 토시야 미쓰비시연구소 연구원은 “관광업 특성상 개개 사업체의 규모는 작지만 숫자가 많다”며 “지역 기업과 연계한 산업관광의 촉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야자키 연구원은 “일본경제는 지금 개인소비가 후퇴하면서 기업은 수요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연간 3000만명 이상 외국인이 찾는 지금이야말로 소비 저하를 끌어올리기 위한 외국인 대상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편 일본 관광산업 활성화는 엔저의 영향에 그치지 않는다는 평가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재집권 이후 2013년 시정연설에서 “전세계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관광입국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베 전 총리의 관광진흥정책은 이후 소멸하는 지방을 살리기 위한 ‘지방창생’ 정책의 일환으로도 적극 추진됐고, 비자면제 확대와 외국인 관광객 교통비 인하 등 각종 혜택을 주기도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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