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OECD의 화학물질 안전관리 전략
최근 해외직구로 구매한 제품들에서 기준치를 훨씬 넘는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커머스 플랫폼 덕분에 전세계 어디에서나 제품을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렇게 구매한 제품들에 대한 안전성은 항상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들을 통해 화학물질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각국은 자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실정에 맞는 화학물질 관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현대사회는 이렇게 온 오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어 개별 국가의 관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화학물질 안전관리 문제는 이제 국제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데 화학물질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회원국의 합의를 통해 다양한 정책과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 이는 회원국들이 화학물질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법적 틀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회원국들은 중요한 화학물질을 우선적으로 평가하고 필요할 경우 위해성을 줄이는 조치를 취한다.
표준화된 시험지침과 첨단 과학기술 활용
화학물질 안전관리의 기본원칙은 산업용 및 소비자 제품에 사용되는 화학물질들의 유해성을 파악하고, 유해성이 크다면 그 정도에 따라 제조 유통 사용 등을 규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유통되고 있는 수십만종의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OECD는 두 가지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첫번째는 화학물질 유해성 정보 공유이다. OECD 화학물질 안전관리 전략의 핵심은 데이터 상호인정 시스템 (MAD)이다. 이는 한 나라에서 생성된 화학물질 안전데이터를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받게 하는 원칙으로, 각 회원국들이 동일 화학물질에 대해 중복된 실험을 하지 않도록 하여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회원국의 협업을 통해 보다 많은 화학물질에 대한 독성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한다. OECD는 이를 위해 표준화된 시험지침(GLP)을 마련했다. 한 국가에서 OECD의 GLP에 따라 수행된 안전성 시험데이터는 다른 OECD 회원국에서도 인정된다. OECD의 이러한 전략은 수많은 화학물질의 유해성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생산해 국제적으로 일관성 있는 화학물질 관리 이행에 도움을 주고 있다.
두번째 전략은 화학물질 평가에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독성정보를 얻기 위한 전통적인 동물실험 방법은 느리고 동물윤리 문제가 있어 시험 평가법의 혁신이 절실하다. 한편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다양한 혁신적인 과학기술 성과들을 화학물질 규제 정책에 활용하는 경우는 매우 미미하다.
최근 OECD는 첨단 과학적 성과를 정책에 활용하기 위해 화학물질 평가에서의 첨단과학 자문기구(ESCA)를 설립했다. ESCA는 혁신적인 과학적 성과가 화학물질 안전관리 정책에 활용되도록 과학기술과 정책 결정과의 브릿지 역할을 하고 있다.
ESCA의 대표적인 활동은 화학물질의 독성발현경로(AOP)를 화학물질 유해성평가에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AOP는 화학물질이 건강에 미치는 연쇄적인 영향을 분석하여,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조기에 예측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6월 프랑스 파리 OECD 본부에서 열린 OECD ESCA 회의에서는 오가노이드, 독성발현경로(AOP) 네트워크, 인공지능(AI) 같은 첨단기술이 화학물질 평가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OECD ESCA 회의에 참석한 한국 대표부에서도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연구 성과인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간독성 평가법과 AI 알고리즘을 이용한 간독성 예측 플랫폼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OECD는 과학자, 정책결정자, 그리고 일반 시민 사이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소통을 촉진하고 있다. 표준화된 방법론, 첨단기술의 통합, 그리고 투명한 데이터 공유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이며, 과학적 발전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과학자들과 정책결정권자들의 소통 필요
과학과 정책을 연결하려는 OECD의 이러한 노력은 회원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도 첨단과학기술의 성과가 화학물질 안전관리 분야 정책개발에 이어질 수 있도록 과학자들과 정책결정권자들이 보다 활발하게 소통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과학적 성과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과학자들에게도 큰 보람이 될 것이다.
서울시립대 교수 환경독성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