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트럼프 피습과 정치 양극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세 도중 총격을 받은 사건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적 심각성은 총격범의 범행 동기에 대한 의문이나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미국 대선 국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뛰어넘는다.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을 자처했던 미국이 또다시 민주주의의 시험대에 섰다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점에서다.
미국은 이미 3년 전인 2021년 1월 트럼프의 대선 패배에 반발한 극렬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을 최종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리던 의사당을 급습해 난동을 벌여 극단적 분열상을 노출한 바 있다. 그 이후 미국 정치의 극단적 분열과 대립은 정도가 더했으면 더했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번 트럼프 피격 사건은 사실상 내전 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 정치가 양극화돼 있기 때문이라는 미국내 전문가들과 언론의 분석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미 NBC방송은 “정치폭력이 극도로 양극화된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동안 세계 여러 국가에서 정치적 테러 사건이 끊이지 않아 우려를 키워왔다. 2년 전 일본에서는 아베 전 총리가 지원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아 숨졌고, 9개월 뒤 기시다 총리는 사제 폭탄 투척 사건으로 화를 당할 뻔했다. 지난달 8일엔 덴마크 총리가 코펜하겐의 주요 광장 가운데 한 곳인 쿨토르베트에서 유럽의회 선거 유세 도중 한 남성으로부터 습격을 당했고, 지난 5월에는 슬로바키아 총리가 각료회의 뒤 지지자들을 만나던 도중 총격 피습을 당해 4시간 가까이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증오와 분열을 담은 정치적 폭력 사태는 우리로서도 ‘강 건너 불구경’할 일이 아니다. 퓨리서치센터의 2022년 조사에서 19개 주요국가 가운데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과 갈등이 가장 심한 국가 1위는 한국이었다.
1.6 의사당 폭력 사태를 겪은 미국이 2위였다는 점은 충격일 수 있지만, 우리의 정치 양극화가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는 점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지난 1월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표가 부산에서 흉기 습격을 받았다. 20여 일 뒤엔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중학생이 휘두른 돌에 머리를 10여 차례 가격당했다. 앞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당대표 시절의 박근혜 전 대통령 등도 흉기 피습을 당했다.
지금이야말로 혐오와 증오의 정치가 민주주의에 가져다 줄 위험에 대해 정치권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서로 다른 견해를 ‘선과 악’의 구도로 나누고 악마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대화를 통해 타협을 만들어내는 정치의 본질을 되살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