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공직할당’ 반대시위로 정국 혼란
10여명 사망…미 “시위권 보장”
방글라데시가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에 반대하는 대학생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이를 진압하려는 정부 당국은 물론 집권 여당소속 대학생들과도 충돌해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정국이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열흘 이상 이어진 시위와 충돌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만큼 악화되자 미국 정부와 유엔까지 나섰다.
18일(현지시간) 현지 다카트리뷴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전날 언론 브리핑을 통해 “평화적인 시위대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규탄한다”며 방글라데시 정부를 향해 “평화적으로 항의할 개인 권리를 지켜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대변인을 통해 방글라데시 정부에 위협이나 폭력으로부터 시위대를 보호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다카트리뷴은 이날도 다카 여러 지역에서 오전 시간부터 학생과 시민들이 도로를 봉쇄한 채 시위에 나서고 경찰이 최루탄 발사로 맞서면서 시내 교통이 차단되고 시장과 상점이 문을 닫는 등 혼돈 상태라고 보도했다. 시위대는 △경찰 폭력 중단 △시위 중 사망자에 대한 정당한 처리 △폭력 없는 캠퍼스 보장 △공무원 할당제의 합리적 개혁을 요구하며 완전 셧다운을 선언했다.
앞서 15일에는 ‘독립 유공자 자녀 공무원 할당제’ 도입을 놓고 수도 다카를 비롯해 전국 대학에서 학생 수천명이 반대 시위에 나서고, 이에 집권당인 아와미연맹(AL) 학생 지부 회원들이 찬성 맞불시위로 충돌하면서 10여명이 사망하고 수백명이 다쳤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어지자 셰이크 하시나 총리는 17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사법위원회를 구성, 이번 사망 사건을 엄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학생들이 정의를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소요 사태의 원인인 할당제 폐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반대 시위대를 독립전쟁 당시 파키스탄 군과 협력한 라자카르 군에 비유하는 등 노골적으로 할당제 부활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지난 2018년 방글라데시 정부는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참가자 자녀들에게 공직 30%를 할당하는 정책을 추진했지만 대규모 대학생 반대 시위로 폐지했다. 그러나 지난달 다카 고등법원이 이 정책에 문제가 없다며 정책 폐지 결정을 무효로 하자 대학생들이 다시 거세게 반발하며 전국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이 제도는 수십만개에 달하는 공직과 관련해 독립전쟁 참가자 자녀들에게 30%, 여성과 특수지역 출신에게 각 10%를 배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생들은 소수민족 및 장애인을 위한 6% 할당만 유지하고 나머지 할당에 대해서는 폐지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방글라데시에서는 많은 이들이 안정적이고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은 정부 일자리를 선호한다. 매년 약 40만명의 졸업생이 공직 3000개를 놓고 경쟁할 정도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