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제 개편한다…노동계 “정부 주도권 강화” 반발
이정식 고용부 장관 “소모적 갈등과 논쟁 반복” … 문재인정부도 개편 추진했지만 노사 반발로 좌절
내년 최저임금이 올해(9860원)보다 170원(1.7%) 오른 시급 1만30원, 월급 기준 209만627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었지만 2021년 1.5%에 이어 역대 두번째로 낮은 인상률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 2.6%는 물론 2025년 물가상승률 전망치 2.1%에도 미지지 못한다. 사실상 실질임금 감소다.
올해도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심의는 노사간의 팽팽한 힘겨루기였다. 최임위 11차례 전원회의 가운데 7차 회의까지 사용자위원의 업종별 구분 적용을 놓고 맞섰다. 표결과정에서 투표를 저지하려던 일부 근로자위원들이 의사봉을 빼앗고 투표용지를 찢는 일도 발생했다.이에 8차 회의는 사용자위원들의 불참으로 공전됐고 9차 회의에서 노사의 최저임금 최초요구안이 제시되면서 본격화됐다. 실제 협상은 10차 회의와 자정을 넘겨 차수 변경으로 이뤄진 11차 회의였다. 4차 수정안까지 이어지면서 격차가 900원에 이르자 결국 노사 위원들의 요청으로 공익위원들은 ‘1만~1만290원’의 심의 촉진구간을 제시했다. 이후 노사 각각 제시한 최종안(5차 수정안)인 시간당 1만120원과 1만30원을 놓고 투표에 부쳐졌다. 민주노총측 근로자위원 4명의 퇴장 속에 23명 중 14명이 경영계안(1만30원)을 찍어 최종 결정됐다. 공익위원 9명 중 4명은 노동계 안에, 5명은 경영계 안에 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매년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된고 있다.
최임위는 근로자·사용자·공익 위원 각각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된다. 공익위원이 심의촉진 구간, 권고안을 제시하면서 사실상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공익위원 9명 전원을 임명하다 보니 정부의 성향과 정책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다.
이인재 최임위 위원장은 심의 종료 뒤 간담회에서 “지금의 최저임금 결정 시스템으로는 합리적 생산적인 논의가 진전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고용부를 중심으로 제도개편에 대해 심층 논의와 후속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5일 입장문을 내고 “최저임금의 결정구조와 결정기준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고 이를 반영해 본격적으로 제도와 운영방식 개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시점”이라며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을 고시하는 8월 5일 이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논의체를 구성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의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과정이 마치 개별기업의 노사가 임금협상을 하듯 진행돼 소모적 갈등과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며 제도개선 이유를 설명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결정에 노사의 영향력을 줄이고 정부의 주도권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편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의 최저임금 제도개선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19년 2월 문재인정부는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구간설정위원회와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고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고용·경제상황’을 추가하는 개편 최종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전문가들로 구성된 구간설정위가 최저임금 심의구간(상·하한선)을 설정해 주면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한 결정위가 그 범위안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했다. 구간설정위는 노사정이 각 5명씩 15명의 전문가를 추천하고 노사가 각 3명씩 6명을 순차 배제해 최종 9명으로 구성한다. 결정위는 노·사·공익위원 각 7명씩 21명으로 구성하고 공익위원 7명을 기존 정부 단독추천에서 국회 4명, 정부 3명 추천으로 바꿨다.
또한 현행 최저임금 결정기준인 근로자의 생계비 및 유사 근로자 임금, 소득분배율, 노동생산성에다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성장률 포함 경제상황’을 추가했다. 초안에 있던 ‘기업의 지불능력’이 포함됐으나 최종안에선 뺐다. 당시 정부안은 노사의 모두의 반발과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좌절됐다.
●‘업종별 구분 적용’ 지속, ‘도급 근로자 적용’ 과제로 = 이번 최저임금 제도개선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사 쟁점으로 먼저 ‘업종별 구분 적용’과 ‘도급제 근로자 최저임금 별도 적용’이다. 사용자위원들은 한식·외국식·기타 간이 음식점업과 택시 운송업, 체인화 편의점을 구분 적용이 필요한 업종으로 제시했다. 근로자위원들은 최저임금법 5조 3항에 따른 특수형태근로·플랫폼 근로자 등 ‘도급제’ 그로자 최저임금을 별도로 정하자고 주장했다. 이를 고용부가 논의할 수 있다고 했고 공익위원이 중재안으로 최임위가 아닌 실질적 권한을 지닌 국회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하는 방안을 노사가 받아들였다.
최저임금 제도 개선과 관련해 사전에 정한 규칙에 따라 최저임금인상률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방안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정부 고용부 고용정책실장은 지낸 임무송 한국산업안전협회 회장은 “통계에 근거한 최저임금 산식을 제도화해 결정기준을 객관화하자”고 제안했다.
임 회장은 “최임위도 합의 불발 시 공익위원이 산식을 적용하지만 사후 꿰맞추기라는 비판을 받는다”면서 “생계비, 유사근로자 임금 등 최저임금법의 결정기준들을 기초로 산식을 제도화함으로써 투명성을 높이고 정치적 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의결 조직과 분리해 통계조사와 노동시장 영향 분석을 전담하는 조직을 최임위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식은 이번 최저임금 심의과정에서 공익위원이 제시한 심의촉진 구간에서도 나왔다. 하한선 1만원은 작년 6월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서 중위임금의 60% 수준이고, 상한선 1만290원은 국민경제생산성 산식에 따라 2024년 물가상승률 전망치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더한 뒤 취업자 증가율을 뺀 수치다.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산식을 2021년과 2022년 최저임금 권고안에 사용했다. 당시 권고안이 최저임금으로 결정됐다. 당시 권 교수는 “예측 가능하고 결정기준이 될 수 있는 산식을 마련하자는 것이 공익위원의 기본 문제의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다른 산식이 있다. 오상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4개의 결정기준에 대해 “심의에는 4가지 기준을 모두 검토하지만 직접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지표들”이라며 “실제 생계비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은 최저임금 인상률 결정에 직접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는 거의 없고 직접적으로 주로 활용하는 지표는 유사근로자의 임금과 최저임금의 상대적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방안으로 “기준지표를 기준으로 추가로 다른 지표와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그 지표에 따른 인상률보다 높거나 낮게 결정하는 방식으로 사전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면서 “독일은 협약임금 인상률이라는 가이드 지표가 있고 나머지 지표로 위와 아래 중 어디를 정할지 결정된다”고 말했다.
기준지표로 명목임금인상률 실적치(전망치)나 명목임금인상률에 물가상승률의 1/2를 더한 값을 제시했다. 추가지표로는 생계비나 노동수요 관련 지표를 들었다.
●“공익위원 안 제시 금지” 최종 노사 안 놓고 투표 = 또한 현재 공익위원 개편 방안으로 오 선임연구위원은 “대중의 불만을 고려하고 노사의 적극적 협상을 유인하기 위해서 공익위원 안을 제시하는 것을 금지할 것”을 제안했다. 일정한 시한을 정하고 그 시한까지 제시된 최종적인 노사의 안에 대해서만 투표하는 것으로 한쪽이 인상률안 제출을 거부할 경우 제출된 한가지 안만으로 찬반 투표에 부치는 방식이다. 2017년 최저임금 심의에서 초기부터 공익위원들이 공익위원안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는데 이때 노사가 인상률 격차를 극적으로 줄여서 최종안이 각각 16.4%와 12.8%였던 사례를 들었다.
임무송 회장은 “최임위 위원 수를 9명으로 줄이고 노사정이 각각 3명을 추천하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 심의 과정에서 노사 등 이해관계자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하는 영국식 모델”을 제시했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제도 개선 과제 중 가장 급한 것으로 결정일(고시일)을 12월로 조정을 들었다.
1988년부터 1993년까지는 1월1 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최저임금을 적용해 12월에 고시했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 9월 1일부터 다음해 8월 31일까지 최저임금을 적용하면서 결정일이 8월 5일로 바뀌었다. 2005년 이후 다시 적용시기가 1월 1일부터 12월 31일로 바뀌었지만 고시 시기는 여전히 8월 5일이다.
오 선임연구위원은 “사실상의 결정일과 적용기간 사이에 6개월이라는 긴 시차는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만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더 큰 문제는 적용기간에 가까운 시점의 경제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심의기간(4~6월)에 활용할 수 있는 통계는 1년 전 또는 2년 전의 것이고 실제 적용기간의 2~3년 전 통계를 활용해 최저임금액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임금 결정, 노사간 힘의 관계와 사회분위기 =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결정기준 등의 개편도 노사의 이해관계로 쉽지 않고 바뀌더라도 현재 상황과 비슷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은 노사 간 힘의 관계로 사회분위기나 여건 속에서 노사가 각각 교섭력을 어떻게 발휘하는지가 가장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집권 초인 2018년 최저임금 16.4%, 2019년 10.9% 인상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사회분위기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가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상 심상정 후보는 2020년까지 1만원을, 홍준표 자유한국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022년까지 1만원을 공약했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