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자녀 성인되고 10년 지나면 소멸”
대법원 전원합의체, 기존 판례 태도 변경
성인되면 양육비 금액 확정, 일반 채권과 동일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를 사후에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자녀가 성인이 된 후 10년까지만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그동안 자녀가 성년이 된 이후에도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양육비청구권이 성립하기 전에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날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8일 A씨가 전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양육비 심판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다수 의견으로 양육비 지급 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확정했다.
원고인 A씨는 1971년 B씨와 결혼해 1973년 아들을 낳았다. 부부는 1974년부터 별거하다가 1984년에 정식으로 이혼했다. A씨는 이혼한 뒤부터 아들이 성인이 된 1993년까지 19년간 혼자 키웠다. 그는 2016년 B씨에게 1억2000만원 상당의 양육비를 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아들이 성인이 된 때로부터 23년이 흐른 후였다.
1심은 B씨에게 과거 양육비 6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B씨측은 과거 양육비 청구권 시효가 소멸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2심에서 판결은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아들이 성년이 된 1993년을 기점으로 10년이 흘러 양육비 지급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했다며 A씨 청구를 전부 기각했다.
이는 당사자 간 협의나 법원 판단이 있기 전이라면 소멸시효와 무관하게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다고 본 2011년도 대법원 판례와 다른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6년간의 심리 끝에 이날 전원합의체를 통해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은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미성년이어서 양육의무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진행하지 않고, 자녀가 성년이 돼 양육 의무가 종료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판단했다. 자녀가 미성년인 동안에는 양육비의 변동 가능성이 있어 완전한 재산권이라고 볼 수 없지만, 성년이 되면 금액이 확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채권과 마찬가지로 소멸시효 계산이 시작된다는 취지다. 일반 채권도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전 판례에 따르면 적극적으로 과거 양육비 청구권을 행사한 경우 그 소멸시효가 진행해 오히려 불리해지는 결과가 발생했다”며 “자녀 복리와 법적 안전성이라는 소멸시효제도의 취지 및 구체적 타당성을 적절히 조화시켰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노정희·김상환·노태악·오경미·신숙희 대법관은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협의 또는 심판에 의해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성립하기 전에는 친족관계에 따라 인정되는 추상적 청구권의 성질을 가지므로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가 없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권영준 대법관은 다수의견 결론에는 동의하면서도 양육비 청구권 소멸시효는 양육자가 미성년 자녀를 부양하는 시점부터 진행된다고 봐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