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달라졌다

널뛰는 장마, 결국 바람 흐름을 잡아야 산다

2024-07-22 13:00:01 게재

온난화로 여름철 대기 상층부 기류 느려져

중위도 지역 동서 방향 바람 속도에도 영향

지긋지긋한 장맛비는 대체 언제 그만 내릴까. 22일 기상청은 “정체(장마)전선 영향으로 23일까지 수도권과 강원 내륙 및 산지를 중심으로 돌풍과 함께 천둥 번개를 동반한 매우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며 “제3호 태풍 ‘개미’가 영향을 주면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쪽으로 일시적 확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보했다. 이에 따라 정체전선이 북상하면 전국 강수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일 수 있다. 태풍이 어떻게 관여햐느냐에 따라 장마 종료 시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번 환경면에서는 해마다 반복되지만 매번 궁금한 장마에 대해 살펴봤다.

결국 모든 건 ‘바람’에 달렸다.

정치 얘기가 아니다. 흐름을 제대로 읽는 이가 승자가 되는 건 기상·기후에서도 마찬가지다. ‘송곳 폭우’ ‘띠장마’ 등 해마다 각종 신조어를 만드는 장마를 잘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류’에 답이 있다.

18일 예상욱 한양대학교 에리카 교수(기후진단)는 “지구온난화로 대기 상층(지상에서 5km 이상) 바람 세기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며 “대기 상층에는 남북 혹은 동서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데, 우리가 사는 중위도지역의 경우 서쪽에서 동쪽이 주된 흐름(편서풍)”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서 방향의 바람 속도는 남북 온도차에 비례하는 역학적인 규칙이 있다”며 “온난화로 남북 방향의 온도차가 줄어들면서 동서 바람의 세기도 약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열받은 지구가 탈진 증후군을 일으키면서 이른바 ‘풍맥경화(風脈硬化)’를 일으키는 셈이다.

우산 쓰고 기다리는 버스 전국 곳곳에 비가 내린 16일 오후 서울 남산을 찾은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대기 상층 흐름이 하층을 지배한다? = 대기 상층 흐름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기 하층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역학적으로 보면 대기 상층에 있는 기압골이나 기압능이 파동형태로 지나갈 때 이 흐름에 의해 대기 하층에서 상승이나 하강 기류가 생긴다. 대기 상층 흐름이 대기 하층을 지배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런 바람의 흐름이 장마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장마, 즉 비가 오는 건 3차원적인 구조다. 연직 운동(대기 중에서 수직 방향으로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 있어야 수증기가 빗방울이 되고 무거우면 떨어진다. 이런 연직 운동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기안정도가 중요하다. 연직 방향 안정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층은 물론 상층의 공기 온도 습도 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대기 상층에는 굉장히 다양한 주기에 의한 흐름이 존재한다. 3~7일 정도의 수일 주기(數日週期)는 물론 30~60일 등이 뒤섞여있다. 장마의 경우 주기 자체가 여름이라는 계절 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계절 내의 변동이나 대기 파동을 주로 본다. 기상청에 따르면 계절 내 변동성은 일반적으로 20~80일 정도의 주기를 가진다.

통상 중위도 대기 상층에서 고위도는 기압이 낮고 저위도는 기압이 높아 등고선과 나란히 편서풍이 분다. 하지만 여기에 변동이 생기면 바람의 흐름에도 변화가 생긴다. 대기 상층 공기 흐름이 정체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부는 바람이 약해지고 남북으로 부는 바람이 강해지는 등 이른바 ‘블로킹(차단) 현상’이 발생한다. 블로킹은 극단적인 기상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장마에만 해도 짧은 시간 내 한정된 지역에 많은 양의 비가 집중되면서 여러 재해가 속출했다. 전북 군산시 어청도의 경우 불과 1시간 만에 146.0㎜ 폭우가 쏟아졌다. 시간당 강수량이 30㎜ 이상이면 ‘매우 강한 비’로 분류된다. 이 기준의 약 5배의 비가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내린 것이다.

기상청의 ‘장마백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와 같은 장기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강수 강도 변화를 살폈을 때 집중호우 발생 비율이 확대되는 추세다. 1991~2020년을 10년 단위로 끊어서 분석했을 때 2000년대 들어 서울 및 수도권을 중심으로 7월 집중호우 발생일수가 많았다. 최근 10년간 강수빈도는 이전에 비해 전국적으로 감소했지만 호우 및 집중호우 발생빈도는 지역에 따라 늘었다.

또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보고서에서 제시한 공통사회 경제경로5-8.5(SSP5-8.5) 시나리오와 결합 모델 상호비교 프로젝트(CMIP)의 모델 상위 7개 등을 활용해 미래 장마 모습을 예측한 결과에 따르면 한반도 여름철 전체 강수량은 △2020~2039년 0~5% △2040~2059년 5~15% △2060~2079년 10~20% 증가할 전망이다.

제주도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17일 오전 제주시 한림읍 금능해수욕장에서 피서객들이 여름 정취를 즐기고 있다.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북태평양 고기압, 예년보다 북서쪽으로 확장해 = 우리나라 장마에 영향을 주는 기단에는 △열대몬순 기압골(고온다습한 기단) △북태평양 고기압(온난하며 열대몬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건조하지만 오호츠크해 기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습윤한 기단) △오호츠크해 기단(한랭습윤한 기단) △대륙성 기단(온난건조한 기단) △극기단(북극의 한대기단) 등이 있다.

장마 기간 동안 한반도 주변 대기 하층부에는 해양에서 대륙으로의 습윤한 공기 유입이 활발하다. 이렇게 되면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돌아 불어오는 남서·남동풍 계열의 기류와 멀리 벵골만과 동남아시아 동중국해를 거쳐 불어오는 해양성 기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

이번 장마의 경우 북태평양 고기압이 예년보다 북서쪽으로 확장된 상황이다. 고온다습한 남서풍이 북태평양 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한반도로 유입되는데 그 경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상대적으로 키가 큰 고기압이다.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 변화는 정체전선 지속과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동아시아 여름 기후를 결정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한다. 북태평양에 중심을 잡은 고기압이 동아시아 대륙이 있는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 고기압 가장자리의 바로 북쪽에 놓인 정체전선이 더 잘 유지된다.

전선 위치도 한반도를 걸치는 경우가 많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돼도 중간에 소강상태가 나타나는 이유도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에 변화가 생겨서다.

18일 서울 강남 탄천주차장 일부가 물에 잠겼다. 연합뉴스

◆장마 막바지에 비가 더 온다? = 기상청에 따르면 6월 19일부터 7월 17일까지 전국 누적 강수량(260.2㎜)은 같은 기간 평년(1991~2020년) 누적 강수량(252.7㎜)을 넘어섰다. 이는 평년 장마 기간 평균 강수량 356.7㎜에도 근접한 수치다. 이처럼 극한호우에 시달리는 나날들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장마 종료 시점에 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장마백서에 따르면 1991~2020년 중부지방의 평균 장마 시작일은 6월 25일이다. 종료일은 7월 26일이고 지속기간은 31.5일이다. 제주는 평균 6월 19일에 시작해 7월 20일에 끝났다. 21일 우진규 기상청 통보관은 “태풍 ‘개미’가 중위도 지방 기압계를 다시 한번 어그러뜨리는 시기에 접어들어 장마 종료 시점을 말하기 어렵다”며 “태풍에 따른 북태평양 고기압 변화로 인한 정체전선 활성화 위치 변동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장마 종료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세간에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나온다. 장마 막바지에 비가 더 내린다는 것이다.

우 통보관은 “장마 초기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 세력을 북쪽으로 밀어 올리는 양상을 보이기보다는 단계적으로 들어오면서 그 사이를 지나는 저기압들이 정체전선을 활성화시켰다 빠져나가는 걸 반복한다”며 “이때가 ‘장마가 시작했다는 데 왜 비가 안 오지?’라며 궁금해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마 중기를 넘어 말기로 향하면 북태평양 고기압 자체가 세력을 많이 확장하는 상태가 된다”며 “전체적으로 남쪽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체계적으로 형성이 되므로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은 수도권까지 북상할 수 있는 여건이 돼서 비가 더 많이 온다고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7월 중순 이후가 되면서 더 체계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정체전선을 떠받칠 수 있는 디딤돌이 더 견고해진다는 의미다. 우 통보관은 “수증기 공급이 장마 초기와 달리 체계적으로 많이 들어오면서 전반적으로 정체전선 강도나 정체전선에 의한 강수 지속 시간이 늘어나는 추세가 있을 수는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기압골 = 등압선을 그렸을 때 저기압 쪽을 향해 V자 형이나 U자 형을 이루는 부분이다. 휘어지는 정도가 가장 큰 부분을 연결한 선을 기압마루선이라 한다. 휘어지는 정도에 따라서 얕은 골 혹은 깊은 골이라고도 부른다.

기압능 =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기압치가 나타나는 부분이다. 일기도에서 등압선이 언덕 형태를 나타내는 영역에 해당한다. 파도를 일차원적으로 표현했을 때 물결(혹은 언덕) 윗부분을 생각하면 된다.

SSP5-8.5 시나리오 = 산업기술의 빠른 발전에 중심을 두어 화석연료 사용이 높고 도시 위주의 무분별한 개발이 확대될 거라고 가정한다. 또한 이로 인한 복사강제력이 8.5W/㎡(지구 에너지 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강도를 측정하는 데 사용)인 상황을 의미한다. 지구의 각 ㎡마다 추가 에너지가 평균 8.5W 유입된다는 뜻으로 극단적인 기후변화를 나타낸다.

CMIP = 결합 모델 상호비교 프로젝트(Coupled Model Intercomparison Project)의 약자로 전세계 기후모델링 센터들이 참여하는 국제 연구 과제다. 결합 모델 간의 불확실성을 평가하고 기후 모의에 대한 모델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1995년에 시작됐다. 결합 모델은 대기 해양 등 지구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하나의 통합된 체제로 연결한 컴퓨터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