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패싱’ 김 여사 조사, 파장 확산
이원석 총장 ‘성역없는 수사’ 강조해왔는데
제3의 장소 비공개 조사 … 총장에 사후보고
이 “필요 조치” 예고 … 검찰 내 갈등 불가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김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으로 고발된 지 약 4년 3개월 만에 비로소 검찰 조사가 이뤄진 것인데 오히려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성역없는 수사’를 강조했던 것과 달리 김 여사에 대한 조사가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진행된데다 이 총장에 대한 보고도 뒤늦게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면서다. ‘검찰총장 패싱’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 총장은 “대통령 부인 조사에서 원칙이 안지켜졌다”며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이 총장은 자신의 거취를 걸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향후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 총장은 22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국민들에게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진상 파악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부족하다면 거취까지 판단하겠다”고도 했다.
지난 주말 서울중앙지검이 진행한 김 여사에 대한 조사 과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최재훈 부장검사)와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는 지난 20일 김 여사를 서울중앙지검 관할 내 정부 보안청사로 소환해 대면조사했다.
반부패수사2부는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형사1부는 김 여사가 재미교포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원 상당의 명품가방 등 여러 선물과 함께 청탁을 받은 의혹을 수사해왔다.
검찰에 따르면 김 여사는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 20분경까지 약 12시간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오후 6시 30분경까지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조사가 먼저 이뤄졌고 오후 8시부터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고 한다.
김 여사는 앞서 이달 중순경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70쪽 가량의 서면답변서를 제출했고, 검찰은 이를 토대로 김 여사가 자신의 계좌가 주가조작 거래에 쓰인 것을 알고 있었는지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여사는 사건 관계자들과 연락하며 공모한 적이 없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품가방 의혹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최 목사로부터 가방을 받은 경위와 직무 관련성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는 최 목사가 건넨 가방은 직무 관련성이 없고 직원에게 반환을 지시했으나 직원의 실수로 돌려주지 못한 채 포장 그대로 보관해왔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동안 이 총장은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며 검찰청사로 김 여사를 불러 조사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조사는 검찰청사가 아닌 서울 종로구 창성동의 대통령경호처 부속청사에서 비공개로 이뤄졌다.
게다가 이 총장은 물론 대검 간부들도 김 여사에 대한 조사 일정과 장소 등을 사전에 보고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중앙지검이 이 총장에게 보고한 것은 김 여사 조사가 시작되고 10시간 가량 지난 오후 11시 30분경이었다고 한다. ‘검찰총장 패싱’ 논란이 불거진 이유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해선 검찰총장의 지휘권이 배제돼 수사 상황을 보고할 수 없고,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선 조사 여부가 불확실해 미리 보고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초 김 여사측에서 도이치모터스 의혹과 관련해서만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이어서 수사지휘권이 없는 이 총장에게 사전에 보고할 수 없었고, 조사 과정에서 김 여사측이 명품가방 수수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를 받기로 함에 따라 뒤늦게 보고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중앙지검은 또 김 여사를 검찰청사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로 조사한 것과 관련해 “현직 대통령의 영부인인 만큼 경호와 안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검은 “검찰총장은 물론 대검 간부 누구도 보고받지 못했다”며 “조사가 끝나가는 시점에서야 사후 보고를 받았다”고 불만감을 드러냈다.
뒤늦게 보고를 받은 이 총장은 주변에 “이런 상황에서 내가 계속 근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며 자신의 거취까지 고민할 정도로 사태를 심각하게 파악했다고 한다. 이 총장은 또 “다른 걸 떠나 검찰총장이 국민과 약속했는데 못 지키게 된 것”이라며 “저렇게 사건이 종결된다고 (국민이) 믿겠나”라고 주변에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 총장은 사태가 불거진 이후 처음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면서도 김 여사 조사과정에 대한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당초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명품가방 수수 의혹 관련 김 여사에 대한 대면조사를 마침에 따라 조만간 검찰 수사가 매듭지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특히 명품가방 수수 의혹의 경우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는 금지규정만 있고 처벌 규정이 없어 불기소 처분할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이 총장이 중앙지검 수사 과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김 여사 관련 사건 처리 방향을 놓고 검찰 내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