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PF 늘었지만 ‘경·공매’ 더뎌…당국 ‘강화된 지침’ 보내 압박
금감원 “경공매 규정,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 안해”
‘유찰 후 재공매시 최저 입찰가격 10% 인하’ 주문
정리계획 제출 후 6개월 이내 이행 등 매각 ‘독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부실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경·공매를 통한 정리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금융당국이 ‘강화된 지침’을 마련해 금융회사들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PF사업장 정리를 위한 규정이 시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규정을 바꾸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규정 개정 이전에 지침을 통해 경·공매 압박에 나선 것이다.
2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22일 금융권 전체에 내달 9일까지 PF사업장에 대한 사업성 평가결과 ‘유의’와 ‘부실우려’ 등급 사업장에 대한 정리계획을 제출하라고 공문을 발송하면서 정리계획에 포함될 세부 지침을 함께 보냈다.
금감원은 내년 2월까지 부실 PF 사업장 정리를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금융회사들에게 정리계획을 제출하라는 통보와 함께 재구조화·정리 이행 완료 예정일을 계획서 제출일로부터 6개월 이내로 설정하게 했다.
금융회사는 유의 등급을 받은 PF사업장에 대해 자율매각 계획을, 부실우려 등급을 받은 사업장에 대해 경·공매 계획을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PF사업장에 대한 자율매각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은 매각계획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자율매각 사업장이 경·공매로 정리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부동산PF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에 경·공매 처리 규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금감원이 별도의 세부 지침을 마련한 것은 현재 규정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공매 물건이 몇 백건 나왔지만 낙찰은 1건에 불과하다”며 “현재 PF 정리 규정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규정은 부동산 PF 대출 원리금이 6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 경·공매 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지침을 통해 3개월 이상 연체된 경우 즉시 경·공매에 착수하도록 했다. 또 유찰 시 재공매까지 3개월이었던 기간을 1개월 이내로 단축하고, 경·공매 착수 시점부터 6개월 이내로 최종 완료 목표일을 설정하게 했다.
최저 입찰가격을 너무 높게 설정해 경·공매로 나온 사업장이 유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초 1회 최종 공매가는 장부가액으로 설정하도록 했지만 유찰 후 재공매 때는 직전 회 최종 공매가보다 10%가량 낮게 설정하는 것을 권고하는 예시를 지침에 포함시켰다.
금감원은 금융회사들로부터 제출받은 재구조화·정리 계획이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내달 19일부터 현장 점검과 서면 점검을 병행하면서 경영진 면담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정리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면 9월부터 경·공매 물량이 대거 나올 가능성이 높고 올해 연말과 내년 초에는 낙찰을 통해 새로운 사업자에게 넘어가는 사업장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부실 사업장이 경·공매를 거쳐 새로운 사업자로 넘어가면 낮은 토지대금으로 사업장을 넘겨받은 새 사업자가 그 만큼 사업성을 확보해 사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새마을금고에 대해서도 새마을금고중앙회를 통해 다른 금융권과 동일하게 세부 지침과 함께 정리계획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이번 세부지침은 금융위원회와 협의 없이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결정했으며 금융위 내부에서는 조치가 과도하다는 지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의 압박에 금융회사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금감원 지침을 공개적으로 반박하지는 않고 있지만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사업장 정리를 사실상 강제하는 움직임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모 저축은행 대표는 “경·공매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부실 정리를 위한 금융당국의 조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논리에 위반되는 방향”이라며 “합리적 수준으로 시장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은 너무 강압적”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도 “영업실적이 저조한 상황에서 PF사업장 충당금도 쌓아야 하는 부담이 너무 크다”며 “부실을 빨리 털어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금리 등 시장 상황에 따라 PF사업장의 경쟁력이 살아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일률적인 잣대로 강제하는 당국의 조치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