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한동훈의 길, 윤석열의 길
희망보다 우려를 더했던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났다. 정치인 한동훈의 데뷔도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총선 비대위원장으로 차출되면서 이미 정치 영역에 한발 들여놨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당 대표에 출마해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무대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한 대표 앞에 놓인 길은 꽃길이 아니다. 당장 총선참패로 난파선이 된 당을 추슬러야 하고,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내부 갈등도 수습해야 한다. 더구나 전대가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대결이 되면서 그 과정에서 감정이 골이 더 깊게 패힌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정립에 대한 해법도 찾아야 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전대 다음날 만찬회동에서 러브샷을 하며 “우리는 다 같은 동지”라고 화합의 목소리를 냈지만 이 평화가 지속되리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국민의힘 전 대표였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장담처럼 당장 1주일 뒤부터 전쟁이 시작되지는 않을지라도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평화로운 동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체질화 된 검사스러움, 미래비전 부재는 닮은 꼴
이런 가시밭길을 뚫고 정치인 한동훈은 연착륙할 수 있을까.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집권 2년 만에 총선에서 유권자로부터 심판받았고, 이은 전당대회에서 당원들로부터도 외면당한 윤 대통령의 오답노트를 반면교사 삼으면 된다.
사실 윤 대통령의 실패는 일찍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2022년 3월 대통령선거 다음날 내일신문은 윤석열정권이 연착륙하려면 ‘포용의 정치’ ‘과거와의 단절’ ‘미래비전 제시와 공유’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제시했다.<2022년 3월 10일자 시론 참조>
‘비호감 대선에서의 초박빙 당선’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출발하는 윤 대통령이 가진 무기는 ‘포용’밖에 없다는 것, ‘승리’에만 방점을 두고 밀어붙였다가는 여소야대 상황 타개는커녕 국민의 반감만 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 2년 윤 대통령은 야당을 적대시했고, 언론과 담을 쌓았으며, 공정과 상식의 정치를 기대했던 중도층마저 돌려세웠다.
‘검찰공화국’에 대한 국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과거와 단절을 주문했지만 윤 대통령은 오히려 검찰 출신들로 인의 장막을 쳤고, 스스로도 격노와 일방통행의 ‘입틀막 정치’로 다른 목소리를 원천 차단했다. 대통령 말만 옳다고 박수를 쳤던 ‘반향실효과(echo chamber)’는 결국 용산을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버렸다.
지금 대한민국이 헤쳐나가야 할 과제가 만만찮은 만큼 여의도정치의 좁은 틀에서 아웅다웅할 게 아니라 미래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은 도리어 낡은 이념과 진영대결의 과거로 돌아갔다. 집권 2년을 갓 넘긴 대통령이 당원들로부터도 찬밥신세가 된 것은 이처럼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얼핏 보기에 많이 다른 것 같다. 저돌적인 보스와 머리 좋은 참모처럼 이미지가 서로 다르고, 채 상병 특검이나 김건희 여사 수사 등 현안에 대한 시각은 더더욱 다르다. 하지만 한꺼풀만 들춰보면 둘은 닮은 점이 더 많다.
검사 출신이라는 점 말고도 넘치는 자신감과 남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 독불장군 스타일도 비슷하다고 한다. 게다가 평생 국가가 부여한 권력을 휘두르며 살아 몸에 밴 검사체질은 빼다박았다. 윤 대통령도 ‘검사스러운 정치’로 스스로 무덤을 팠지만, 한 대표 또한 전대과정에서 ‘검사스러운 처신’으로 여러번 입길에 오른 바 있다.
법조인 출신 특유의 과거지향성도 닮은꼴이다. 지난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정치에 한발 들여놓은 이후 지금까지 한 대표가 보여준 미래비전은 전무하다. 아마 과거를 단죄하는 검찰의 직업적 특성이 몸에 배어서 그렇겠지만 그게 핑계가 되지는 않는다. 정치인은 어설프더라도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이다. 미래비전이 없는 정치인의 미래는 없다. 그 사실을 지금 윤 대통령이 몸소 입증해 보이고 있다.
난파선 선장 되지 않으려면 윤 대통령과 정반대 길 가야
더구나 한 대표는 막스 베버가 지적한 ‘권력에 내재한 비극성’을 깨닫기도 전에 팬덤정치의 단맛을 본 사람이다. 팬덤은 정치인에게 큰 자산일 수 있지만 팬덤정치의 본질을 꿰지 못하면 세상 모두가 자신에게 환호하는 것처럼 과대망상에 빠지기 십상이다. 과대망상과 나르시시즘의 ‘트럼프 모델’이 한 대표가 지향하는 정치인상은 아닐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는 전에 없는 적을 만났다. 그 적은 바로 윤 대통령이다. 그 외에 다른 결론을 내린다면, 그래서 또다시 비슷한 선택을 한다면 대한민국의 보수는 궤멸의 위기에 봉착할 것이다. 한 대표가 그 ‘비슷한 선택지’가 되지 않으려면, 난파선 선장이 되고 싶지 않다면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걸어온 길 정반대로만 가면 된다.
남봉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