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개정안, 상위 1% 슈퍼리치에 혜택·부가세 증세는 서민증세”

2024-07-26 13:00:28 게재

야당·전문가 ‘부자감세’ 반발에 세법개정안 표류 위기

나라살림연구소 “상속세·법인세 감세-부가세는 증세”

“고소득자와 대기업 등 최대 18조원 세금 감면 효과”

정부가 최고세율을 40%로 낮추는 등 25년 만에 처음으로 상속세제를 전면 개편한다. 하지만 고소득자와 대기업 등에 최대 18조원의 세수감면 효과가 발생하는 반면,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은 세 부담이 커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상속세와 소득세, 법인세 등이 감면되면서 고소득층은 유리해지는 반면, 부가가치세는 오히려 증세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모든 상품에 일괄적으로 매겨지는 부가세 증세는 대표적 ‘서민증세’로 손꼽힌다. 그로 인해 2년째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재정상황이 더 어렵게 되고 재정건전성 역시 경고등이 켜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이때문에 세제개편안이 정부안대로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다. 올해 세제개편안을 ‘부자감세’로 규정한 야당의 반대가 만만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속세 어떻게 바꾸려하나 =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는 상속세율 조정이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 2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행 상속세율은 △과세표준 30억원을 초과하면 50% △10억~30억 40% △5억~10억 30% △1억~5억 20% △5000만~1억 10%다.

이 같은 최고세율을 10억 초과 시 40%로 10%p 하향 조정한다는 것이 골자다. △5억~10억 30% △2억~5억 20% △2억원 이하 10%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50%의 세율을 적용 받던 30억원을 초과하는 거액 상속자가 집중적인 혜택을 보게 된다. 또 20% 세율을 적용받던 1억~2억 과세표준 대상자도 소폭 세금 감면 효과를 얻는다.

상속재산 공제도 늘어난다. 현재 인당 5000만원인 자녀 공제를 인당 5억원으로 높인다. 현재 상속세 공제는 기초공제 2억원에 더해 자녀 1명 당 5000만원의 자녀공제 합계액 혹은 일괄공제 5억원이 적용된다. 대부분 상속인이 일괄공제를 선택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자녀 1인당 공제 기준이 5억원으로 커진다. 여기에 기초공제와 배우자공제까지 더하면 상속재산 상당액을 더 공제받게 된다.

◆정부는 4조, 전문가는 ‘18.4조 감세’ = 정부는 이번 상속세 과표와 세액 조정으로 세수가 4조565억원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중 서민과 중산층은 6282억원, 고소득자는 1664억원의 감세 효과를 얻고 중소기업은 2392억원, 대기업은 917억원의 감세 효과를 받을 것이란 설명이다. 기타 부문의 감세 효과는 3조2260억원이었다. 정부는 “이번 상속세제 개편으로 인한 혜택은 서민과 중소기업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해석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서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고 그 혜택은 고액자산가들이 받게 된다”고 반박했다. 연구소 추계에 따르면 이번 세제개편안으로 향후 5년(2025년~2029년)간 소득세 감면액은 2조2800억원, 법인세 감면액은 2100억원, 상속세와 증여세 감면액은 18조6000억원이었다. 반면 부가가치세는 1조7000억원 증액된다. 대기업과 고소득자에 혜택이 집중되는 상속세·법인세는 깎아주고, 일괄적으로 걷는 부가세를 증세한 것은 결국 ‘부자감세-서민증세’로 귀결된다는 주장이다.

◆“서민·중소기업엔 사실상 증세” = 연구소는 이번 개편안에 따른 향후 세수 전망 계산 자체가 잘못됐다고도 지적했다. 연구소는 “정부는 순액법 합계에 따라 계층별 세부담 귀착효과를 설명하지만, 실질 현금흐름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순액방식이 아닌 총액법으로 세수 전망을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향후 5년간 고소득층은 18조6000억원의 세금 감면 효과를 얻고 중산층 이하는 2500억원의 세금 증대 효과를 볼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소는 “(현재) 상속이 발생한 사람 중 상위 5%만 상속세를 납부한다는 점에서 이번 개편으로 이득을 보는 계층은 상위 5% 내외”라며 “이번 상속세 감면으로 인한 5년간 세수 감소효과 18조6000억원은 사실상 (주)전액 고소득자 귀속 세금감면액”이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상위 5% 이하는 상속세를 거의 납부하지 않는 만큼, 이번 개편에 따른 혜택 범위도 5%로 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구소는 “2022년 기준 전체 상속세 결정세액의 92%를 상위 10% 피상속인이 납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 상속세 감면은 초고자산가에게 집중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상속세 최고세율이 10% 내려가고 대주주 할증도 폐지되면서 결국은 부자들만 좋아지는 내용의 세법개정안”이라며 “과표구간이 10억원에서 30억원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세 부담에) 큰 차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가업상속 공제 혜택은 중소기업이나 중산층이 아닌 600억원 이상을 상속받는 초고자산가에게만 귀속되는 만큼 이는 전액 고소득층 혜택으로 분류해야 한다.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에 따른 특혜도 매출액 5000억원 이상 재벌기업 주식을 상속받는 재벌 3세, 4세”라고 연구소는 지적했다.

◆나라살림 적자 더 커질 우려 = 이번 세제 개편으로 세수 결손은 더 악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지난해 정부 예산은 56조원의 사상최대 세수 결손을 기록했다.

연구소는 “올해 본예산 기준 관리재정 수지 예상치는 92조원 적자에 달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5년간 18조4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감세를 담은 24년도 세법개정안은 재정과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안으로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특히 “상속세 감면액이 5년간 18조6000억원인 반면 부가가치세는 오히려 1조7000억원 증대되는 등 조세 형평성이 심각하게 무너지는 세법개정안”이라며 “노동 소득보다 상속 소득에 더 유리하게 과세하면 조세 중립성이 무너지고 경제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법 개정까지는 첩첩산중 = 이번 세제개편안 윤곽이 나오면서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끊이지 않던 ‘부자 감세’ 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상속세 완화와 주주환원촉진세제 도입 등 초부자들의 세금 부담을 낮추는 세제개편안은 집권 초부터 이어져온 부자감세 기조를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입으로는 건전재정을 외치면서 부자감세로 나라 곳간을 거덜 내고 조세 원칙과 미래를 위한 세입기반을 무너뜨리는 정부의 무책임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정책위의장도 “정부 세법개정안은 ‘부자감세·재정파탄·서민증세’ 패키지 상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세수결손의 주요 원인은 법인세수 급감”이라며 “올해 5월까지 걷힌 법인세수는 지난해에 견줘 15조3000억원(35.1%) 감소했다. 유일하게 늘어나는 세법개정안 내 세목은 부가가치세”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상속세 최고세율을 인하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서 설명하더라도 상위 1% 슈퍼리치들에 대한 혜택”이라고 비판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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