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속인 보험가입 “보험금 지급”

2024-07-29 13:00:03 게재

대법 “통지의무 위반으론 해지 못해”

고지의무 위반에도 해지기한 지나

고객이 실제 직업을 속이고 보험 계약을 체결해도 계약 후에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보험 계약을 맺을 때 사실대로 알려야 하는 ‘고지의무 위반’일 수는 있지만, 직업이 바뀐 경우가 아니라면 가입 기간에 중요 사항이 바뀌었을 때 알려야 하는 ‘통지의무 위반’으로 보험을 해지할 수 없고 계약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권영준)는 망인 A씨의 유족 3명이 메리츠화재를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일용직 노동자였던 A씨와 배우자는 2009년, 2011년, 2016년 3차례에 걸쳐 A씨를 사망자로 한 보험 계약을 메리츠화재와 맺었다. 상해 사망 및 후유장애, 일반 상해사망 등 관련한 보험이었다. A씨의 실제 직업은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였지만 보험 계약 체결 당시 직업란에 사무원, 건설업종 대표, 경영지원 사무직 관리자 등으로 적었다. 실제 직업보다 사고 발생 위험이 낮은 직업으로 속인 것이다.

A씨는 2021년 공사현장에서 작업 도중 추락해 숨졌다.

유가족이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사는 ‘알릴 의무를 위반했다’며 보험계약을 해지하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유가족은 보험 계약에 따라 2억2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는 “계약 후 알려야 했다”며 지급 가능한 보험금은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의 보험료율을 적용한 9300여만원이라고 주장했다. 보험사는 계약 전 알릴 의무 위반(고지의무)이 아닌 계약 후 알릴 의무(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들었다.

상법 652조는 “보험기간 중 피보험자가 사고 발생 위험이 현저하게 변경된 사실을 안 경우 지체 없이 보험자에게 통지해야 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보험자는 그 사실을 안 날로부터 1개월 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통지의무를 규정한다.

계약 전 의무 위반은 상법 제651조 고지의무를 근거로 하는데, 이 경우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기간에 제한이 있어서다.

이후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도 메리츠화재는 “A씨가 보험사에 안내한 직업과 다른 직종에 종사해 보험사고 위험이 커졌음에도 계약 체결 이후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상법상 통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쟁점은 상법 제651조의 고지의무(약관상 계약 전 알릴 의무)를 위반한 것에 더하여 경합적으로 상법 제652조의 통지의무(약관상 계약 후 알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1심 재판부는 A씨 유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보험계약 기간 중 실제 직업이 변경되지 않았다면 보험사에 고지된 직업과 다르더라도 상법상 통지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며 “피고는 원고 A에게 9480만원, 원고 B, C에게 각 632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상법 652조에서 통지의무 대상으로 규정한 ‘위험의 변경 또는 증가’는 보험기간 중에 발생한 것으로 한정된다고 보는 게 문언에 충실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와 유족이 보험계약 당시 중요한 사항을 사실대로 알려야 한다고 규정한 ‘고지의무’(상법 651조)를 위반했다고 볼 순 있다고 봤다.

다만 상법은 보험사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기한을 ‘부실 고지를 안 날로부터 1개월 내, 혹은 계약을 체결한 날로부터 3년 내’로 제한했고, A씨의 경우 이 기간이 지나 보험사의 해지권이 소멸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와 대법원도 이런 1심 판단에 오류가 없다고 보고 보험사의 항소·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는 있어도 통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해지할 수는 없다”며 “고지의무 위반에 따른 해지권 행사의 제척기관이 경과해 보험자가 고지의무 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할 수 없게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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