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도 국민도 관심없는 ‘명분쌓기용’ 필리버스터
방송4법 놓고 닷새째 무제한 토론 … 본회의장 텅 비어
민생지원금법·노란봉투법 놓고 2라운드 예고 ‘정치 실종’
국회의 방송4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정국 제1라운드가 30일에 종료될 전망이다. 제2라운드는 민생지원금법과 노란봉투법이 상정되는 다음달 1일 시작될 예정이다. 표결 때만 본회의장이 북적이고, 필리버스터 때는 의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모습이 벌써 닷새째 지속되자 정치권 안팎에선 염증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토론하는 국회의원도, 토론이 닿아야 할 국민들의 관심도 저조한 ‘무의미한 체력전’을 도대체 언제까지 봐야 하느냐는 아우성이다.
29일 우원식 국회의장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방송4법 중 마지막 법안인 교육방송공사(EBS)법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4차 필리버스터의 첫 주자로는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이 나섰다. 김 의원은 “EBS법을 포함해 방송4법이 공정한 언론 환경을 만드는 법안이면 왜 문재인 정부에서는 하지 않았나”라며 “민주당이 어떻게든 권력을 장악하고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날 본회의에선 방송4법 중 3번째 법안인 방송문화진흥회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약 31시간 만에 강제 종결하고 법안을 표결에 부쳤다. 여당 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상태에서 이뤄진 표결에서 재석 187명 전원 찬성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방송4법 중 다른 두 개 법안(방송통신위원회법·방송법 개정안)도 같은 방식으로 처리됐다. 지난 25일 오후 5시 30분쯤 방통위법에 대한 필리버스터가 시작됐고 다음 날 오후 강제 종료 후 야당 의원들 찬성으로 법안이 통과됐다. 이어 방송법 개정안이 상정됐고 30시간이 흐른 28일 새벽에 필리버스터 강제 종료 및 표결처리가 반복됐다.
이들 법안에 대해선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예고돼 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야당 단독으로 강행한 법안들인 만큼 거부권 등 합당한 수순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이 5박6일을 지새우며 토론하고 법안을 통과시켜봐야 윤 대통령의 거부권을 넘지 못하고 다시 국회로 되돌아오는 수순이다. 거대 여야 모두 ‘우리는 이만큼 노력했다’는 것을 지지층에게 보여주기 위한 명분쌓기용 수준의 정치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무제한 토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법안의 내용이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국회 필리버스터가 중계되는 유튜브 채널마다 댓글에선 각 당 지지자들의 상대 당 비판이나 정치 그 자체에 대한 환멸이 담길 댓글이 난무한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주변 사람들 중엔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고 전하며 “지금 국회엔 민생도 없고 정치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국회의원 본인도 필리버스터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졌다. 각 당마다 조를 짜서 본회의장을 지키고는 있지만 토론 내용을 귀담아 듣기보다는 시간만 때우는 형식이다. 27일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찬성토론에 나선 박선원 민주당 의원 토론 때에는 여당 의원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 우 의장이 이를 지적하기도 했다.
주호영 국회 부의장은 이같은 상황을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요약했다. 주 부의장은 필리버스터 본회의 사회를 거부하며 낸 입장문에서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증오의 굿판을 당장 멈춰야 한다”며 “여야 지도부가 국회의원들을 몰아넣고 있는 이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보들의 행진’은 다음달부터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다음달 1일 노란봉투법과 민생회복지원금법에 대한 본회의 처리를 시도할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방송4법과 마찬가지로 두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예고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