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생명과 원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

2024-07-31 13:00:01 게재

올 여름 일본열도 북쪽에선 기록적 홍수, 남쪽에선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도쿄는 게릴라성 폭우와 40℃ 가까운 폭염이 3주 이상 이어지며 아열대성 기후로 변한 느낌이다. 태풍도 8~9월에 걸쳐 빈번히 북상할 것이다. 안 그래도 지진 위험도 높은 일본에서는 생명안전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 7월 26일 일본원자력규제위원회는 후쿠이현의 쓰루가 원전2호기(116만㎾, 36년간 운전) 재가동에 대해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일본의 원전 재가동 심사 역사상 첫 불합격 판정이다. 이유는 원전 부지 밑에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원전 재가동 심사 역사상 최초의 불합격 판정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정부가 원전 가동을 전면 중지하고 재가동 심사를 위해 2012년에 환경성 외부조직(독립조직)으로 설립한 기구다. 2013년에 제정된 심사기준에 따르면 원전은 활성단층이 없는 곳에 설치되어야 한다. 기존 원전에 활성단층이 확인되면 해당 원전은 재가동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까지 규제위가 ‘불합격’을 결정한 일은 한번도 없었다.

7월 말 현재 일본의 전체 원전 60기의 상황을 보면 건설 중인 3기와 폐로(해체) 확정된 24기를 빼면 운전 가능 원전은 33기(3308만㎾)다. 이중에 재가동 중인 원전은 12기(1161만㎾)이고, 안전심사 통과 5기, 불합격 1기, 심사 중 7기, 미신청 8기다. 8월 중에 1기 재가동이 추가될 예정이고 일본정부는 올해 중에 17기를 재가동하고자 한다.

원전에 대한 글로벌 사회의 인식이 다시 변하고 있는 것도 배경에 있다. 즉 2023년 말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에서 원자력이 기후변동 대책으로 처음 명기되었고, 일본은 미국·한국·프랑스·영국·스웨덴 등 22개국과 함께 원전 용량을 오는 2050년까지 2020년 대비 3배 이상 확대하는 ‘원자력 3배 선언’에 참여한 바 있다.

원전에 대한 전향적인 분위기가 확산된 데는 기후문제와 더불어 에너지 자원의 대외의존을 줄이려는 에너지 안전보장 정책도 반영되어 있다. 일본정부는 이를 위해 전력회사가 원전을 해체한 만큼 신규 원자로를 자사 보유 원전 입지 내에 건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새로운 ‘7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넣을 예정이다. 해체가 확정된 24기를 대체하는 신규 원전 건설이 가능해진다.

일본정부는 탈탄소 녹색전환(Green Transformation, GX) 이라는 명분 하에 전력 수요를 늘리고 그 상당부분을 원전에 의존하려 한다. 경제산업성은 향후 10년간 탈탄소에 필요한 민관 투자를 150조엔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이를 위한 목적의 새 국채인 ‘GX경제이행채’를 발행할 계획이다. 일본 경제계는 성장 기폭제의 하나로 원전(해체와 건설)을 보고 있다.

‘녹색전환’ 내건 일본 정부의 친원전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

원전 지향적인 일본정부의 정책에 대해 원자력규제위가 처음으로 ‘NO’를 표시한 것은 정부와 원전업계에 충격이다. 현재 안전심사를 통과한 원전 5기 중 가시와자키원전 2기(니가타현)와 동해 제2원전 1기(이바라키현) 등 3기가 지자체의 재가동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지자체의 동의가 재가동을 위한 법적조건은 아니지만 사실상 필수조건인데 해당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크다.

기후재난이 잦아지는데도 주민들은 왜 이렇게 원전 재가동에 반발하는가? 원전문제는 모든 생명체의 안전 문제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를 ‘다핵종제거설비(ALPS)처리수’라는 이름으로 희석하고 이를 태평양에 방류하는 것을 일본 사회는 생명안전의 문제로 보고 있다.

일본 원전업계와 정부 그리고 학계가 만들어낸 원전안전에 대한 신화적인 미신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설 자리를 이미 잃었다. ‘녹색전환’을 내건 일본정부의 친원전 정책이 에너지안보와 생명안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찬우 일본경제연구센터 특임연구원 전 테이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