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살 아파트’ 부른 감리 ‘짬짜미’
5천억원대 공공입찰 담합·심사위원 금품제공 68명 기소
“일해서 돈버는 시대 갔다” 심사위원이 뇌물경쟁 시키기도
아파트와 병원 등 공공건물의 안전 시공을 관리·감독해야할 감리업체들이 ‘짬짜미’로 5700억원대 입찰 물량을 나눠먹은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감리업체를 선정하는 심사위원들에게 거액의 금품을 제공하고 일감을 따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정거래조사부(김용식 부장검사)는 입찰 담합과 금품수수 사건을 수사해 68명을 공정거래법 위반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가운데 ‘좋은 점수를 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주고받은 대학교수 등 심사위원 6명과 감리업체 대표 1명은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17개 감리업체와 소속 임원 19명은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5000억원에 달하는 LH 용역 79건과 740억원 상당 조달청 발주 용역 15건에서 낙찰자를 미리 정하고 들러리를 서주는 방식으로 담합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LH가 공지하는 연간 발주계획을 기준으로 낙찰 물량을 나눴는데 2020년에는 전체 물량의 70%를 담합에 가담한 업체들이 나눠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국토교통부와 LH는 최저가 낙찰로 품질이 저하되는 등 부작용을 막기 위해 2019년 심사위원의 정성평가 비중을 늘리고 기술력 위주로 평가하는 ‘종합심사낙찰제’ 등을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감리업체들은 안정적인 이익 창출을 위해 기술 경쟁 대신 담합을 택한 것이다.
업체들은 이 과정에서 재량권이 커진 심사위원들을 뇌물로 매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2020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공공입찰 심사위원들에게 청탁과 함께 적게는 300만원에서 많게는 8000만원의 금품을 제공한 감리업체 임원 20명과 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전·현직 대학교수와 시청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등 심사위원 18명을 함께 기소했다. 이렇게 건네진 뇌물 액수는 총 6억5000만원에 달했다.
검찰은 “자기들끼리는 경쟁하지 않지만 최고 점수를 받아야 낙찰이 되기 때문에 뇌물을 준 것”이라며 “담합과 뇌물을 통해 불법적으로 고가 낙찰을 받은 뒤 그 금액을 다시 뇌물에 쓴 구조적 범죄”라고 지적했다.
입찰 심사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업체들은 특정 문구를 표시해 심사위원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증거인멸이 쉬운 텔레그램이나 공중전화로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다.
일부 심사위원들은 업체들끼리 소위 ‘레이스’를 붙여 더 높은 뇌물액을 제시하게 하거나 경쟁사에 꼴찌 점수(폭탄)를 주고 웃돈을 받았다. 여러 업체들에게 동시에 돈을 받는 ‘양손잡이’도 있었다.
아내에게 “이제 일해서 돈 버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앞으로 (정년까지) 9년 8개월 남았는데 죽어라 심사하고 돈 벌어야지요”, “여행 가려면 돈 벌어야 해요”라는 문자를 보내거나 발주처에서 받은 자문 업무를 감리업체 직원에게 대신 작성하도록 한 사례 등도 적발됐다.
검찰은 “공공건설 분야 입찰은 아파트, 병원 등 대규모 주택과 공공시설물을 대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담합행위가 이뤄지면 국가재정이 누수될 뿐 아니라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감리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 기소된 업체 중에는 지난해 철근 누락에 따른 지하주차장 붕괴로 ‘순살 아파트’ 오명을 얻은 인천 검단 아파트, 2022년 붕괴 사고가 난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 감리업체도 포함됐다.
이번 수사는 담합에 참여했던 한 업체가 지난해 8월 검찰에 자수하면서 본격화됐다. 검찰은 담합 자진 신고시 처벌을 면해주는 형벌감면제도(리니언시)에 따라 가장 먼저 자수한 업체를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같은 사안을 조사하며 협력해온 공정위는 대검 요청에 따라 지난 23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고발했다.
검찰은 “국토부 등 유관기관과 입찰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며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공소를 유지하고 적극적인 몰수·추징을 통해 불법이익을 박탈하는 등 부정부패 범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