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예 암살’ 화약고 중동 폭발직전

2024-08-01 13:00:02 게재

이란 하메네이 이스라엘에 직접보복 명령 … 네타냐후 “모든 위협에 단호하게 맞설 것”

사에이드 이라바니 유엔 주재 이란 대사(가운데)가 7월 3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안보리는 하마스의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테헤란에서 살해되고 레바논 수도에서 헤즈볼라 최고 사령관이 표적이 된 후 이란의 요청으로 긴급 회의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정세가 최근 잇따른 무력충돌과 암살 등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가자지구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한 데 이어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이란에서 암살했다는 의심까지 받으면서 전선이 급속도로 확대될 조짐이다. 이른바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이라크 민병대 등이 보복을 다짐하며 격앙했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최대한 피해오던 이란이 이번 하니예 암살로 직접 보복까지 언급하면서 사태가 어디로 튈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군통수권자이자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자국에서 하니예가 암살되자 최고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3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혁명수비대원 등 이란 정부관계자들을 인용해 이같이 밝혔다.

신문은 이란이 얼마나 강력하게 대응할지와 보복 시 긴장 고조를 피하기 위해 정밀하게 공격 수위를 조절할지 등은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또 이란군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텔아비브 및 하이파 인근의 군사 목표물에 대한 드론 및 미사일 복합 공격을 검토하고 있으나 민간인 목표물에 대한 공격은 피할 것이라고 이란 정부 관계자들이 NYT에 전했다. 공격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예멘, 시리아, 이라크 등 다른 전선에서 저항의 축들이 동시에 공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전운이 고조되면서 이스라엘의 움직임도 긴박하다.

미국 CNN 방송, 이스라엘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 등 외신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텔아비브에 있는 이스라엘군 본부에서 3시간에 걸친 내각 안보 회의를 마친 뒤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이 힘든 시기를 앞두고 있으며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스라엘이 지난 며칠 동안 적들에게 ‘치명적인 타격(crushing blows)’을 가했다고 평가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3주 전 우리는 하마스 군사 지도자 무함마드 데이프를 공격했다. 2주 전엔 후티(예멘 반군)를 공격했고 이는 공군이 수행한 가장 먼 거리의 공격 중 하나였다. 어제는 헤즈볼라 군사 지도자 푸아드 슈르크를 공격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네타냐후 총리는 슈르크 공격 사실은 확인했지만 전날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피살된 하니예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TOI는 전했다.

하마스와 이란은 하니예 죽음의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으며 타국의 국경을 침범하는 군사작전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NCND’ 입장을 유지해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이 어려운 시기를 직면하고 있다”면서 “(레바논) 베이루트로부터 위협이 있다. 우리는 모든 시나리오에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쟁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싸움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도 재확인했다. 그는 “모든 위협에 맞서 단결하고 단호하게 맞설 것”이라며 “이스라엘은 우리에 대한 어떠한 공격에도 매우 무거운 대가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내외에서 가자전쟁을 끝내라는 압박을 받아왔다”며 “그때에도 그러한 목소리에 굴복하지 않았고 지금도 굴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동이 들끓으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도 소집됐다. 이란의 회의소집 요청에 의장국인 러시아와 중국, 알제리가 지지하면서 회의가 성사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스테판 뒤자리크 대변인을 통해 성명을 통해 “베이루트 남부 및 테헤란에서 발생한 공격은 모든 노력이 가자지구의 휴전과 인질 석방, 인도주의 지원 강화, 레바논 접경지역 평화 회복을 위해 쏟아져야 할 현 시점에서 확전 위험이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당사국들에 최고 수준의 자제를 촉구했다.

하지만 미국 백악관은 31일 하니예의 암살과 관련한 임박한 확전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우리는 중동에서 확전이 불가피하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임박한 갈등 격화의 징후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황을 매우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중동 전쟁이 격화하지 않기 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건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정전 협상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관측과 관련해선 “여전히 유효한 절차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면서 “여전히 가능한 논의가 있고, 흥미를 보이는 당사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백악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중동 지역에 전운이 고조되면서 미국 항공사들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항공편 운항을 잇따라 중단했다. 이날 로이터 통신과 CBS 방송 등에 따르면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은 안전상의 이유로 미국에서 텔아비브로 매일 출발하던 항공편 운항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델타항공도 뉴욕과 텔아비브를 오가던 항공편 운항을 2일까지 중단하기로 했다. 미국 항공사들은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행 직항편 운항을 한차례 중단했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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