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배출 막혔는데 ‘전문의 중심 병원’ 추진
전공의, 수련 포기하고 개원·해외로 눈 돌려 … 의사·학부모단체, 광복절에 증원 철회 궐기대회
지난달 31일 마감된 하반기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모집에서 당초 계획했던 모집 인원 7645명 가운데 1.36%만 지원했다. 정부는 8월 중 추가 모집을 실시하겠다지만 의료계 반응은 냉담하다.
전공의 공백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문의 신규 배출 통로도 사실상 막혀 중증·응급환자 대상의 ‘전문의 중심 병원’을 추진하려는 정부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2일 의료계는 정부가 군 입영 연기 특례 등을 제시했으나 모집 실패는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이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사직 전공의 상당수는 수련을 포기하고 일반의로 동네 병·의원 취업에 나서고 있다. 일부는 개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진출을 알아보는 전공의도 증가했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싱가포르 보건부 산하 공공의료 서비스 지주회사인 MOH홀딩스가 주최한 해외 의료인 채용 설명회에는 수백 명이 몰렸다. 주최측은 참가자 모집에 2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3일 만에 마감된 것으로 전해졌다.
◆세브란스병원 무급휴직 연장 = 전공의 공백 장기화로 대학병원 등의 경영난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외래 환자가 줄어들면서 수입이 줄고, 고정비 지출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업체들의 신규 계약과 신규 임상 연구는 사실상 정지 상태다.
실제로 연세의료원은 1일부터 소속 병원인 세브란스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일반직 직원을 대상으로 한 무급휴직 기간을 기존 40일에서 80일로 확대하기로 했다.
연세의료원은 전공의 이탈로 병원 경영난이 심화하자 올해 3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고 일반직 직원을 대상으로 40일간의 무급휴직 신청을 받았다. 일반직 직원에는 간호사, 물리치료사, 임상병리사 등 보건의료직역 노동자가 포함된다.
연세의료원은 의료공백으로 수술 건수가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후 회복되지 않자 무급휴직 기간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료진의 피로 누적도 심각한 상황이다. 대학병원에서는 50~60대 교수들이 주 1회 당직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
◆중증·환자, 전문의 중심병원 추진 =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의료 공백을 해소하겠다며 상급종합병원 구조개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 의료 중심으로 가기 위해선 1·2차 병원의 역량이 먼저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1일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개최한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과 전문의 중심병원’ 토론회에서 임종한 인하대의대 교수는 “경증 환자를 1·2차 병원으로 보내고, 급성기 치료를 마친 환자들은 적정한 시기에 회송한다는 (정부 방향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면서도 “1·2차 병의원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은진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원은 “급성기를 벗어난 환자들은 요양병원 등으로 보내야 하지만, 낮은 신뢰도·만족도 때문에 설득이 굉장히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이날 토론회에서는 상급종합병원의 수익 구조를 갑자기 전환하기 위해서는 줄어들 수익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사 양성 톱니바퀴’ 멈춰 서 = 이와 함께 의료계에서는 사실상 ‘의사 양성 톱니바퀴’가 멈춰섰다고 지적한다.
전공의는 전문의 자격 취득을 목표로 수련 과정을 밟는 의사다. 인턴(1년)·레지던트(3~4년)를 거쳐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에 전공의 공백이 클수록 신규 배출도 줄어든다.
내년 전문의 시험을 앞둔 전국의 4년차 레지던트는 당초 2910명이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수련을 포기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보다 연차가 낮은 전공의들도 수련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상당기간 전문의 배출은 어렵다.
여기에 의대생들까지 상당수가 수업을 거부하고 국가시험에도 응시하지 않고 있어 의사 부족 현상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의 ‘전문의 중심병원’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대통령 출근길에 증원 철회 현수막 = 한편 의대생 학부모단체와 의사 단체가 의대 증원 철회, 보건복지부 장·차관 파면 등을 주장하는 현수막을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에 설치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의대생학부모연합과 경기도의사회는 1일 대통령 출근길에 의대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앞서 이 두 단체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의대 증원 반대 집회를 열어왔다.
현수막에는 “의사 숫자 증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고, 인구절벽 국가에서 망국적 의대 증원 철회하라” “국민 기만 의료농단 주범 조규홍 박민수 파면하라” “의대생 특혜 원한 적 없다. 증원 위한 특혜 거부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경기도의사회와 학부모연합은 이달 15일 광복절에는 서울시청 앞 대한문 광장에서 ‘의대 교육 정상화 호소’ 궐기대회를 연다. 주최측은 궐기대회에 5000명이 모일 것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