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정치인·기자 ‘통신이용자 정보 조회’ 논란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 수사하며 무더기 조회
민주당 “전방위 사찰” … 언론계 “재발방지 약속하라”
검찰 “적법·정당한 절차, ‘통신사찰’은 악의적 왜곡”
검찰이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 수사과정에서 다수의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행해지는 적법한 절차”라는 입장이지만 야당과 언론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5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는 올해 1월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하면서 주요 피의자·핵심 참고인들과 통화를 주고받은 상대방의 가입자 정보를 조회했다. 이런 사실은 약 7개월이 지난 2일 검찰이 당사자들에게 ‘통신이용자정보제공 사실 통지’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드러났다.
검찰이 통화내역과 문자전송 일시, 통화시간, 기지국 위치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확보하려면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 하지만 이용자 이름과 주민번호, 가입일과 해지일 등 이용자 정보는 영장 없이도 통신사에 조회 요청할 수 있다. 다만 검찰이 이용자 정보를 제공받으면 해당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번에 검찰에서 조회 사실을 통지받은 이들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추미애 의원 등 야당 정치인과 다수 매체의 현직 기자, 언론단체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이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통신 조회가 유행인 모양인데 제 통신 기록도…”라며 통신 이용자정보가 제공됐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 캡처 화면을 올렸고, 추 의원도 같은 메시지를 올리며 “정치검찰의 사찰이 도를 넘었다”고 적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4일 브리핑에서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한다며 수천명의 야당 국회의원과 언론인의 통신 기록을 들여다 본 것”이라며 “정치검찰이 수사를 빌미로 야당 국회의원과 언론을 전방위로 사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또 검찰이 7개월이 지나서야 통신 조회 사실을 통보한 것에 대해 “4.10 총선 민심에 불을 지를까봐 그동안 숨긴 것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언론계도 언론 위축을 우려하며 검찰의 광범위한 통신 조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언론비상시국회의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등 언론인단체는 같은 날 공동성명을 내고 “조회 대상자가 3000명에 달한다는 설도 있다”며 “언론인을 상대로 이렇게 대량의 통신 조회를 한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윤석열정권의 ‘호위무사’로 전락한 검찰은 언론인 ‘통신 사찰’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라”며 “그러지 않으면 시민들과 함께 검찰의 공작적 정치 사찰에 맞서 공동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과 언론계 비판이 제기되자 검찰은 언론 공지를 내고 “가입자 확인 절차는 수사절차에서 당연히 행해지는 적법하고 정당한 절차”라며 “통신 사찰이라는 표현은 악의적 왜곡”이라고 반박했다. 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 사건의 주요 피의자와 핵심 참고인이 주로 언론인이고 일부 민주당 관계자도 포함돼 있다보니 그 통화 상대방에 다른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포함돼 있어 가입자 조회가 이뤄진 것일 뿐 ‘사찰’ 이나 ‘표적수사’는 사실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또 “이번에 통신가입자 조회사실 통지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순 가입자 조회’를 한 것이고 이를 통해 확인되는 정보는 가입자 인적 사항과 가입·해지일시 정도로 통화내역은 조회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7개월이 지나서 통지가 이뤄진 것에 대해선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고 피의자 등에게 통신 수사 중인 사실과 수사 목적이 노출될 경우 증거인멸 등 공정한 사법절차의 진행을 방해할 우려 등이 있어 규정에 따라 유예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르면 통신 가입자 조회 사실은 원칙적으로 30일 이내에 통지돼야 하지만 두 차례에 걸쳐 각 3개월의 범위에서 유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치인과 언론인을 상대로 한 통신 조회 논란은 지난 2021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현 민주당 의원)의 공소장 유출 의혹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당시 공수처가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과 기자, 변호사 등의 통신 가입자 정보를 광범위하게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자 국민의힘은 ‘불법 민간인 사찰’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도 공수처를 겨냥해 “이거 미친 사람들 아니냐”며 강하게 비판했었다. 공수처장을 향해서도 “사표만 낼 게 아니라 당장 구속수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도대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이게 40~60년 전 일도 아니고 이런 짓거리를 하고 백주대낮에 거리를 활보하나”라고 했었다.
공수처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나온 휴대전화 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지만 공수처를 상대로 한 고발과 진정이 이어졌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2월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는 위법하지 않다며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공수처가 원고 등의 통신자료를 수집한 것이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한 수사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구본홍 박준규 기자 bhkoo@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