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전 ‘문서살포’ “위헌 여부 따져야”
1·2심, 100만원 벌금형 … 대법, 파기 환송
“과잉금지 원칙 위배, 표현의 자유 침해”
헌재, 관련 선거법 헌법불합치 결정 다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문서 살포’ 방식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하급심에서 벌금형을 받은 재개발추진위원장이 재판을 다시 받게 됐다. 해당 처벌 조항과 비슷한 유형의 범죄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다수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만큼 하급심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따져봐야 하는데 이를 따지지 않고 유죄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모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김씨는 증산6구역 재개발추진위원장으로 같은 구역에서 공공재개발을 추진하는 다른 주민단체와 갈등을 겪었다. 김씨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2021년 4월 5일 오세훈 후보가 당선되면 지역 재개발이 활성화된다는 내용의 문건 300장을 주변 42개 건물 우편함 등에 살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에게 적용된 옛 공직선거법 93조는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한 지지·반대 의사는 물론 정당 명칭이나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 등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헌재는 2022년 7월 해당 조항 중 ‘벽보 게시, 인쇄물 배부·게시’에 관한 부분 및 같은 법 제255조 제2항 제5호 중 ‘제93조 제1항 본문의 벽보 게시, 인쇄물 배부·게시’에 관한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했다.
헌재는 이후 지난해 3월에도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본문 중 ‘인쇄물 살포’에 관한 부분 및 제255조 제2항 제5호 중 ‘제93조 제1항 본문의 인쇄물 살포’에 관한 부분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고한 바 있다.
1심은 김씨의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배포한 문서의 내용과 배부·살포의 시기 및 방법, 그 지역과 대상, 오 후보의 특보로 임명된 사정 등을 종합하면, 단지 오 후보의 재개발 정책 등을 알리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는 오 후보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해 보궐선거에서 유리한 영향을 받게 할 목적이 있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2심도 1심 판결을 유지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앞선 헌재의 공직선거법 일부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에 따라, 2심 법원이 이 사건에서도 위헌 여부 등을 심리·판단했어야 했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각 헌법불합치결정의 이유는 옛 공직선거법 각 부분이 후보자 및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면서도 규제기간을 합리적인 기준 없이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의 장기간으로 정하고 있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원심이 김씨에 대해 적용한 ‘문서 살포’에 관한 부분은 헌재 결정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각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헌재가 밝힌 이유와 같은 이유에서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원심으로서는 옛 공직선거법 문서 살포에 관한 부분의 위헌 여부 또는 그 적용에 따른 위헌적 결과를 피하기 위한 공소장 변경 절차 등의 필요 유무 등에 관해 심리·판단했어야 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헌법불합치란 법률을 위헌으로 보면서도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입법 기한을 정해두고 그때까지 효력을 존속시키는 결정이다. 국회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받아들여 180일이던 제한 기간을 120일로 줄이는 등 개정안을 지난해 8월 입법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